매일신문

"공권력 불법자행 등 밝혀내 성과" 이영조 위원장

"때론 진실과 화해가 상충하기도 합니다. 덮여있던, 아물어가던 상처를 진실이 다시 되새기게 하는 부작용도 있는 것이죠. 화해라는 것은 그 달성 과정에 있다고 봅니다."

올 연말 활동을 마무리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이영조(55) 위원장은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진실을 밝히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고충도 적지않다"고 했다. 신청사건에 대한 조사 당위성에 대한 고민부터 얼마 남지않은 활동기한에 대한 부담감, 조직 해체 이후 직원들의 거취까지... 차관급인 상임위원으로 일하다 장관급인 위원장에 지난 월 취임한 것도 "독배를 마신 셈"이라고도 표현했다.

진실화해위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따라 노무현 정부때인 2005년 출범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전후,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민간인 집단희생 등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게 주요 업무다. 기본법에서 규정한 '권위주의 통치' 시기에 대해선 출범 때부터 논란이 많았지만 매일신문 특종보도(2000년)로 처음 알려진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사건'이 6·25 전쟁 당시 경찰·헌병대 등 국가공권력에 의해 불법자행된 사실을 밝혀내는 등 성과도 적지않다. 지난 1월에는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에 대해 국가가 강압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친정부적, 보수적이라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서는 "15인 위원회에서 장시간 심의를 거쳐 정하는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정착돼 있다"며 "위원 모두 절차에 따라 지명된 만큼 성향을 나누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 스스로를 "개인의 창의성과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자유주의자"로 평가했다. 또 자신이 창립 사무총장을 맡아 이끌었던 민간단체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에 대해서도 중도성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명의 충돌' 저자로 유명한 고(故)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제자이기도 하다. 1984년부터 6년 동안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지도교수로 사사한 것. 현 정부 첫 외교안보수석이었던 김병국 고려대 교수가 박사과정 동기이고,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는 같은 시기에 하버드대를 다닌 친구 사이. 이 위원장은 "대학교수로서, 학자로서 헌팅턴 교수와 같은 대가와 공부했던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며 "훌륭한 멘토를 모시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이 위원장은 당초 4월 말로 예정된 조사완료 기간을 2개월 연장하기로 지난 1월 결정했다. 전체 신청 1만1천여건 가운데 아직 23% 정도가 남았기 때문이다. 기본법에는 2년 이내 범위에서 조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렇게까진 연장할 계획은 아니다. 그는 "우리 위원회와 같은 한시조직이 너무 오래 하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속도를 최대한 높여 완전히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주 초전면에서 태어난 8남매 중 7째로 태어난 그는 고향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성주는 '자고로 문인현사가 많은 지역'이라고 소개돼 있습니다. 소(小)안동이라 불릴 정도로 유교적 전통도 강하지요. 유림들이 철도를 반대하는 바람에 한때 굉장히 낙후되기도 했지만 특용작물에 눈을 떠 지금은 부촌이 됐죠. 강한 자활의지로 지역의 특성을 살렸기에 앞서나갈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 농사를 지었던 덕분에 수박·참외농사에 훤하기도 한 그는 "현실정치에 전혀 뜻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현재로선 대학교수로서 정년을 맞고 싶다"며 "위원장 임기가 끝나면 대학(경희대)으로 돌아가 집필 활동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주 초전초교, 대구 계성중·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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