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저임금 삭감, 어떻게 살라고…"

경총 "전망 불확실, 최소한 동결"…민노총 "빈곤 악순환 탈출, 2

빌딩 청소일을 하는 A(60·여·대구시 서구)씨는 매일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화장실과 복도 등 2, 3개층을 쓸고 닦느라 진땀을 빼지만 한 달 꼬박 일해 손에 쥐는 돈은 80만원 남짓이다. 법정 최저임금(85만원)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이지만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월급 인상 요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초등학생 손녀와 단둘이 살아가는 A씨는 "아껴 쓴다고 해도 남는 것이 없는 탓에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낸다"며 "하나뿐인 손녀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먹고사는 것도 버겁다"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산 비정규직 노동자가 500여만명에 육박하고 경기침체와 일자리 부족으로 법정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경영계는 올해 최저임금을 삭감하거나 동결을 주장, 최저임금 협상이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저임금 실태는

지난해 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110원(월 85만원). 삶의 질을 따지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는 게 노동계와 현장 근로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민노총이 전국 14가구의 저임금 노동자 표본을 뽑아 2009년 12월, 2010년 1월 작성한 가계부를 분석한 결과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129만원, 월 평균 지출은 163만원으로 매달 34만원의 적자를 기록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민노총이 공개한 대구 저임금 노동자들은 모두 3명(표 참조)으로 대학교와 지하철 등지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는 B(73), C(63·여), D(64·여)씨 역시 저임금의 늪에 빠져 있다. 그나마 겨우 적자를 면한 D씨는 두 달간 수입이 지출보다 14만8천340원 많았지만 B씨와 C씨는 각각 40만1천490원, 128만4천450원씩 적자가 쌓였다.

민노총 대구본부 박희은 비정규사업국장은 "용역업체가 여러 명목을 붙여 월급에서 떼는 바람에 최저임금조차 손에 쥐지 못하는 노동자가 넘쳐나고 있지만 경영계는 오히려 임금을 더 깎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총과 경총의 줄다리기

6월까지 예정된 최저임금 협상을 앞두고 노동계는 경기 회복 추세에 따라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노총은 "상환 능력이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이자가 비싼 신용카드 대출로 적자를 메우고, 다시 대출 이자 상환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결과"라며 "빈곤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노총은 내년 최저임금 협상안으로 올해보다 25.4% 인상한 시간당 5천152원, 월 107만원 선을 제시하고 있다. 민노총은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경제지표를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월 중 설비 투자는 20.4%, 제조업 생산은 38.9% 늘어 경기가 회복세이고 노동자들의 은퇴가 가속화하고 있는 만큼 최저임금 결정의 주요 근거로 쓰던 '29세 미만의 미혼 단신 노동자' 생계비 모델을 전 연령대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입장은 단호하다. 경총은 2000년 이후 경제난 속에서도 최저임금이 꾸준히 인상됐고 앞으로의 경제 전망도 불확실해 최저임금을 삭감하거나 최소한 수년간 동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경총 경제조사본부 황인철 본부장은 "노동 시장의 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최저임금이라는 벽 때문에 구직자들은 일자리를 찾기 더 어려워졌다"며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잘 알고 있지만 기업 부담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사회 보장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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