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책 읽기] 체면(面子), 중국인의 권력유희

황광꾸어(黃光國)(중국인민대학출판사, 2005)

조용한 도서관에서 갑자기 대성일갈이 터집니다. "너 뭐야!" 동시에 두 젊은이가 멱살을 붙잡고 몸싸움을 벌입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한 사람들, 말릴 생각조차 못하고 멀거니 보고만 있습니다. 그때 여학생 한명이 전장에 뛰어들더니 둘의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몸집이 왜소한 젊은이를 여학생이 끌어안자 싸움은 일단락됩니다만 제지당한 쪽은 여전히 고함을 지르며 악을 씁니다. 분이 덜 풀린 모양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던 왜소남과 말리는 여자가 잠시 정담을 주고받았는데, 옆에서 책을 보던 이가 조용히 하라고 면박을 준 모양입니다. 도서관에서 정숙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남학생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제3자의 개입으로 여학생이 보는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머지 학생들의 태도입니다. 다들 '바오'(報'보복)를 외치는 녀석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체면에 손상을 주면 보복한다?' 분명 도서관에서 규정을 어긴 것은 그 녀석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서양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중국인의 특질이 바로 이것입니다. 근대 이후 서양철학이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존재로 규정했지만, 중국인의 '체면, 면목, 얼굴'은 도저히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더 난해한 것은 체면 문제가 개인과 개인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정치권력관계, 국가 대사에도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대만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황광꾸어(黃光國) 교수의 편저 『체면(面子), 중국인의 권력유희』(중국인민대학출판사, 2005)를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중국인이 가진 '인정(人情), 체면(面子), 관계(關係), 보답'보복(報)'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규명하려고 애쓴 학자입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중국인이 가진 이러한 덕목들이 사회교류의 기초가 되어 중국사회에 '집체주의 문화'를 형성시켰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집체사회 중국에 존재하는 소위 '정의'라는 것을 '공평법칙', '균등법칙', '수요법칙'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공평법칙은 각각의 개인이 행한 객관적인 공헌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에 상응한 보수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균등법칙은 개인의 객관적 공헌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두가 일률적으로 고르게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수요법칙은 이윤, 성과 및 기타 이익을 합리적 수요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공평법칙을 말합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가져가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체사회 중국은 다른 것 같습니다. 황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사회 생산물이 분업, 협력, 단결 또는 조화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여 균등하게 나누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분배의 준거를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사람'(人)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필요한 사람이 만족할 수 있게 분배한다는 수요법칙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친밀한 사회집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해당 집단의 이익과 발전에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에게 체면의 문제는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회 유지의 원리인 것입니다. '인정'이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체면을 구긴다는 '띠우리엔'(주검)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서도 치욕으로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어 1935년 북경에서 발생한 범죄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던 남녀 대학생 커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여학생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남학생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받은 여학생이 기숙사로 남학생을 찾아 갔지만 만나지 못하자 목을 매어 자살합니다. 이 사건을 접한 군중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남학생은 구속되어 10년 형을 언도받습니다. 이유는 바로 여학생의 체면을 구기게 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인의 체면은 외교에도 적용됩니다. 중국이 최근 아프리카 외교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1950~60년대 중국을 찾은 아프리카 부족장들을 극진히 대접하여 체면을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G20회의를 준비하는 우리도 새겨두어야 할 내용입니다.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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