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이런 사람이 좋다

나무에서도 인생을 볼 수 있다. 망막에는 나무가 들어오는데 심막에는 사람이 비취니 말이다. 요즘은 눈에 보이는 사물마다 나도 모르게 사람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도 한 살씩 더해 갈수록 자동으로 클로즈업되어 다가온다. 육안 시력의 숫자는 낮아지고 심안 시력은 조금씩 높아져 가는 모양이다.

울산 대왕암의 나무는 우리 삶의 일면을 보여준다. 매양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 따라 거센 파도와 바닷바람이 무방비 상태의 바위섬을 휘감으며 심정을 흔들어 놓고 있다. 바다가 부린 광기를 말없이 수용이라도 하듯 할퀸 자국이 선명한 바위와 소나무는 바람이 잘 지나가도록 몸을 비켜서 비스듬히 서 있다.

바위도 다스리는 소나무 뿌리는 심근성 직근이다. 땅속 깊이 곧은 뿌리를 내리는데 생육 조건이 좋으면 줄기와 같은 길이의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이렇게 심지 깊은 소나무도 바람에 맞대응하지 않고 몸을 굽히거나 젖힌다. 또, 소나무 밑에 있는 바위가 함께 몸을 눕히는 도량을 보노라니 숙사(塾師)를 따르는 문하생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대왕암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은 비스듬히 굽은 소나무와 바람에 떠밀린 바위의 절묘한 조화가 있기 때문이다.

굽은 나무에 버금가라면 서러워할 곧은 나무가 있다. 일전에 메타세쿼이아 길로 여행을 갔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많은 가로수를 만났다. 쌩쌩 달리는 차 때문인지 모든 가로수들은 도로 밖으로 비스듬히 비켜 서 있었다. 그런데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잔가지 하나 휘어짐 없이 꼿꼿한 나무에서 나는 남들이 극찬하는 아름다움보다는 가지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고독을 먼저 보고 말았다.

메타세쿼이아는 천근성 뿌리를 가져 수평으로만 얕게 뻗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좌우 나무와 영양 경쟁을 벌이며 주변 잡목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고 독불장군으로 서 있다. 훤칠한 키에 성정이 곧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한참 관찰하면 자신의 생각 외에는 남과 타협하지 않는 외고집이 보인다.

쭉쭉 뻗은 나무는 단번에 사람의 시선을 잡지만 굽은 나무는 서서히 그 매력이 보인다. 전자의 매력이 일회성 이끌림이라면 후자의 매력은 영구적 이끌림이다. 전자에게서 조형미가 보인다면 후자에게서는 인간미가 보인다.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드러내지 않고 슬쩍 휘어져 주는 아량이 있는 사람이 좋다. 자신을 높이려고 빳빳한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은 어쩐지 얕은 뿌리를 드러낸 메타세쿼이아 같아 오히려 스스로 뽑힐까봐 염려가 된다.

주인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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