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미래 먹을거리를 책임질 대규모 개발단지들이 '교통섬'으로 전락하고 있다. 대중교통망에 대한 계획 없이 무작정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막상 조성 이후엔 사람을 모으는 데 실패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좀더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동시에, 지역의 중요한 프로젝트라는 논리 개발을 통해 국비 확보를 통한 인프라 구축을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다.
◆편하게 가게 해주세요
회사원 김모(45)씨는 얼마 전 친구에게 공연티켓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공연장소가 대구스타디움인 것을 보고 고민만 쌓였다. 지난번에 대구스타디움에서 공연을 본 이후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인근 도로가 관람객의 차들로 주차장이 되다시피하면서 도로로 나오는데만 1시간 정도 걸린 것.
김씨는 "평소 부인이 꼭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했던 공연인지라 안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번처럼 승용차를 가지고 가려니 공연 이후가 두렵고 고민"이라며, "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저번 공연 때 버스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만촌네거리까지 걸어가는 '난민 행렬'을 본 터라 더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대구스타디움에서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김씨 같은 고생을 한번쯤은 해봤음직하다. 7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규모 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인근을 지나는 도시철도 2호선이 정작 이곳은 외면했기 때문이다. 한 문화인은 "특히 스타디움 인근에 시립미술관이 지어지고, 돔구장과 워터파크 등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 갈수록 이 일대 대중교통난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구EXCO 오경묵 홍보팀장은 "조성된 지 10년이 지난 종합유통단지도 대중교통 수단은 절실하다"고 말했다. "요즘 유통단지 하루 유동인구가 2만명쯤 되고, 대구EXCO에만 1년에 300만명이 찾아요. 이런데도 10여년째 시내버스 몇 개 노선이 대중교통의 전부라는 것은 문제가 많은 거죠. 대구공항·동대구역과 연결할 자기부상열차 등의 노선 마련이 시급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박용진 계명대 교수(교통공학과)는 "조성원가를 낮추기 위해 땅값이 싼 곳을 고르다 보니 자연히 대중교통 인프라가 없는 곳에 대규모 개발이 이뤄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수년 뒤 교통 등의 수요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 및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어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만드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대구시의회 차영조 건설환경위원장은 "대구시의 열악한 재정 상황과 당장 몇 년 뒤를 보지 않는 장기적 안목이 없다는 점이 빚어낸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대규모 단지 개발은 대부분 국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사업성은 물론 자금 투입시기를 매우 엄격한 잣대를 통해 고려한다. 종합유통단지나 대구스타디움, 대구테크노폴리스 등에는 도시철도 같은 신교통 노선의 투입에 한계가 있었다"며 "게다가 미래의 교통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현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해 당시의 투자 효율성을 감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시철도 요구 봇물
상황이 이러하자 개발단지마다 대중교통망을 갖춰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대구 달성군 논공읍, 현풍·옥포·유가·구지면 등 대구 서부권 주민들은 대구테크노폴리스와 구지 국가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교통수요 증가와 기업유치 및 지역발전을 위해 대구도시철도 1호선의 구지 연장을 강력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최근 '도시철도 1호선 구지연장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 '20만명 시민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범시민추진위는 "현풍에 테크노폴리스가 조성되고 구지에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화원~논공~구지 29㎞에 정거장 11개소가 포함된 도시철도 연장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대구시가 2007년 정부 공모사업에 응모했다 유치에 실패했던 종합유통단지~들안길 자기부상열차 건설도 최근 들어 다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국내 한 대형건설사가 이 구간(13.3㎞)에 모노레일 건설을 위한 민간투자사업을 시에 제안한 것.
이 건설사에 따르면 들안길~수성네거리~범어네거리~파티마병원~경북대~대구EXCO를 경유하는 모노레일 신설 구간은 총 사업비가 5천500억원 정도이며, 민자 60%(30년 후 기부채납)와 시·국비가 각각 20%씩 지원되며 사업기간은 4년이다.
하지만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는 신중한 자세다. 시비 부담이 엄청난데다 이 구간의 수요가 얼마나 될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도시철도건설본부 관계자는 "테크노폴리스와 국가산단까지의 도시철도 1호선 연장과 들안길~엑스코를 연결할 모노레일 신설 노선은 대구경북연구원에 사업타당성을 의뢰한 결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도 도시철도 기본계획 수립 시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는 대구스타디움을 연결할 도시철도 3호선 시지·경산 연장 사업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이 일대는 대구시립미술관, 돔구장, 수성의료지구, 대구스타디움 지하공간 사업 등이 추진되는 등 향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판단, 총 사업비 3천800억원을 들여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수요가 먼저냐? 공급이 먼저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수요가 없는데 적자를 감수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다'는 입장과 '공급이 미래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김기혁 계명대 교수(교통공학과)는 "대구 시내버스의 연간 적자가 600억~700억원씩 되는 마당에 당장 수요가 없는 곳에 무한정 버스 노선을 집어넣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며 "건설비용이 천문학적인 도시철도의 경우는 수요분석을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진국처럼 대중교통망을 갖춘 후 대규모 단지 개발을 통해 지역 발전을 견인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홍경구 대구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도시의 미래 발전에 필요한 대규모 프로젝트라고 판단하면 대중교통 등의 인프라 구축을 마무리한 뒤 민자를 유도해 개발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우리는 개발 주체가 해당 지자체가 아닌 수익을 우선시하는 LH공사나 수자원공사여서 필요한 부분에 소홀한 경향이 많다"며 "결국 나중에 수요 급증에 따른 교통망 추가 신설로 더 많은 돈을 쓰게 되거나 사람들이 찾지 않는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용진 계명대 교수는 "힘들겠지만 교통 수요에 대한 분석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밖에 대안이 없다"며 "최근 정부도 국가교통 수요분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의지를 보인 만큼 대구도 이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포항 찾은 한동훈 "박정희 때처럼 과학개발 100개년 계획 세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