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디지털 시대가 남긴 그늘] 아날로그 삶을 좇는 사람들

빠르고 편리하지만 인간미 없는 디지털 대신 느리고 불편해도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아날로그 삶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디지털기기에 지배되는 삶보다 인간의 자유 의지 회복을 주장한다.

◆네오러다이트 운동'아나디지족

네오러다이트는 새것을 뜻하는 '네오'(Neo)와 산업혁명에 반대해 영국 노동자들이 벌인 기계파괴운동인 '러다이트'(Ludite)의 합성어다. 네오러다이트운동은 첨단 과학기술 문명에 대한 반대와 인간성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참가 정도에 따라 소극적'적극적 네오러다이트족으로 구분된다. 소극적 네오러다이트족은 첨단문명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외진 곳에 은둔해 사는 반면 적극적 네오러다이트족은 과학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믿음 아래 폭력 등 과도한 방법을 사용한다.

아나디지족은 아날로그의 '아나'(ana)와 디지털의 '디지'(digi)가 합성된 신조어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적절하게 결합해 디지털적인 삶을 제어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디지털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아날로그가 가진 여유와 느림을 통해 디지털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차원에서 등장했다. 디지털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네오러다이트와 구분된다.

◆휴대폰 청정지역

청정지역과 불통지역은 다른 개념이다. 기지국이 설치되지 않아 전파가 잡히지 않는 곳이 불통지역이라면 청정지역은 자발적으로 휴대폰 사용을 막은 곳을 말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휴대폰 청정지역은 법정스님 다비식이 열린 송광사다. 송광사가 휴대폰 청정지역이 된 것은 절의 이력과 관련이 있다. 보조국사 지눌 등 16국사를 배출해 승보사찰이 된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동량을 키우는 수행'정진 도량이다. 그 맥을 잇기 위해 송광사에는 휴대폰 기지국이 설치돼 있지 않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면 수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스님들이 설치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에 있는 작은 마을 슬로칸밸리는 2007년 휴대폰 청정지역을 선포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곳이다. 당시 슬로칸밸리 주민들과 공무원들은 캐나다 서부 최대 통신업체인 텔러스에 송수신탑 설치를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다. 텔러스가 송수신탑 설치 계획을 철회하고 슬로칸밸리를 '휴대폰 프리지역'으로 조성하면 관광객 유치뿐 아니라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슬로칸밸리 경제개발국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실이 마을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은 자연이라는 탈출구를 찾고 있다. 벨소리 없는 곳이야말로 자연의 바람을 들을 수 있는 청정지역이고 슬로칸밸리가 바로 그곳"이라고 주장했다.

◆예광회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지역 중견 사진작가들의 모임으로, 현대화된 디지털 카메라 대신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 있는 수동 카메라를 사용한다. 이용민 회장, 서진해 지도위원 등 14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매년 특색 있는 주제를 정해 전시회를 가질 만큼 사진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지난해 말 소나무를 주제로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가진 전시회에서는 수동 카메라만이 담아낼 수 있는 정서와 생생한 현장감이 가득한 작품들을 출품해 호평을 얻었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는 "예광회 회원들은 전통을 고이 간직하고 가꾸어나가는 장인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이 찍은 사진은 디지털화되고 급변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미학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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