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위원칼럼] 대구적십자병원 사태를 지켜보며

야한 옷차림의 한 여성이 맞은편 사내를 향해 적십자 로고가 담긴 컵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한푼 내지 그래?" 그러자 사내는 대뜸 이렇게 묻는다. "지난 쓰나미 때 적십자사가 거둬들인 수억 유로의 기부금은 모두 어디에 갔소?" 순간, 여자가 뿔난 듯 거칠게 소리친다. "그건 가슴 성형하는 데 썼다. 이 자식아." 파트릭 펠루가 쓴 '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 나오는 본문 삽화의 한 장면이다.

파리 생앙투안 공공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저자는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 센생드니 지역 적십자병원의 폐쇄결정을 내린 적십자사 이사장 장 프랑수아 마테이를 향해 이렇게 조소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적십자사에 수익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던가?"

지금 대구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적자 경영을 이유로 폐원 수순을 밟고 있는 대구적십자병원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 그동안 진행된 상황을 매일신문 기사를 통해 잠시 살펴보자.

1. 대구적십자병원이 병원부지 내 국유지를 투기의 목적으로 매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 제기(3월 5일자)

2. 병원 폐쇄와 이전을 강행키로 해 진료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지역 의료 빈곤층과 외국인 노동자들(3월 12일자)

3. 공공의료기관으로서의 책무성 상실과 이번 사태를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정부와 대구광역시(3월 15일자)

기사의 내용은 대구 거주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한 의료 약자들의 고통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드러냄으로써 대구적십자 병원의 부끄러운 행태와 공공성 상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적십자 병원의 기능 마비로 인해 "수술 등 긴급의료를 필요로 하는 대구 의료빈곤층 환자들이 한 달 사이 5명이 왔다 갔다"는 상주적십자병원 관계자의 말은 그 사실 여부를 떠나 가히 충격적이다. 기사의 내용처럼 대한적십자사가 '이전 타당성이 없다'는 외부용역 결과와는 상반되게 병원 폐쇄를 결정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국유지를 포함한 병원 전체를 통째로 매각해 버린다면 이는 대구시민 전체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안 기사 역시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병원 자체의 합리적 자구책 마련(3월 11일자)이다. "대구적십자병원의 적자는 건전한 적자(공익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적자)로서 합리적 경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경상대 예방의학과 교수진의 조언은 귀기울여볼 만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수의 민간의료기관들이 경영 악화로 고민하고 있으며, 생존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 역시 이러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외부 컨설팅을 겸허히 수용하고, 직원들의 마인드 변화와 더불어 우수의료기관의 경영 노하우를 적극 수용하는 등 그 체질 개선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3월 15일자)이다. "일본은 지자체 공무원을 적십자병원으로 파견해 긴밀히 공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적십자병원 주변 일정 구역 안에는 민간병원 개원을 막아 공공진료 기관을 보호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국제적 사례에 대한 인용은 이러한 사태를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정부와 대구시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다. 사실 의료 빈곤층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구적십자병원 혼자 짊어져야할 이유는 없다. 대학병원이나 대구의료원 등 또 다른 공공적인 성격을 띤 의료기관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수로서는 여전히 중과부적이다. 대구시와 정부가 이번 사태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공의료기관의 확충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로의 재원 마련, 그리고 국민의 인식 전환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 등 많은 난관이 뒤따르겠지만 그렇다고 그냥 뒷짐만 지고 있기엔 서민들의 고통은 너무 크고 깊다.

우광훈 온라인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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