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무선인터넷맹(盲)

전기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은 1882년 최초의 발전소를 세우고 뉴욕시에 전력을 공급하면서 영웅이 됐다. 그러나 원거리 전기 공급을 위해 교류 전력이 필요하다는 조수 니콜라 테슬라의 제안을 무시하고 직류 시스템만 고집한다. 일등 기술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에디슨의 판단 착오는 결국 교류 시스템을 개발한 조수에게 일등 자리를 내주는 결과를 낳는다. '생각의 함정'을 쓴 자카리 쇼어는 합리적인 결정을 방해하는 일곱 가지 인지함정을 꼽으며 에디슨의 경우를 '변화를 거부하는 정태적 집착'으로 분류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최고의 IT 강국으로 군림해 온 우리나라의 인터넷 기술이 현재 겪고 있는 상황도 에디슨의 사례와 비슷하다. 유선 초고속 인터넷 분야에서는 아직 세계 최고를 유지하고 있으나 2000년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무선인터넷 분야에서는 후진국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무선인터넷 보급률은 2%에도 미치지 못해 OECD국가 평균 20%에 턱없이 떨어진다. 관련 시장도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정부와 통신사업자에게서 찾는다. 우리 정부의 규제는 중국 못지않다는 비판을 듣는다. 한국형 무선인터넷 기술인 위피(wipi)를 국내 휴대폰에 무조건 탑재하게 함으로써 세계 업체들의 진입을 막은 게 대표적 사례다. 그 사이 국내 업체들은 짭짤한 수익을 올렸겠지만 세계시장에서의 주도권은 상실하고 말았다.

통신사업자들은 무선인터넷에서 '투자한 만큼 뽑아먹기'에 혈안이었다. 유선인터넷 시장에 안주해 무선인터넷망 투자를 소홀히 한 건 물론 무선인터넷망에 대한 투자 부담조차 사용자에게 떠넘기며 스스로의 입지를 좁혔다. 유'무선망을 동시에 활용하는 무선랜보다 휴대폰을 통해 인터넷에 직접 접속하는 3G 확대에 치중한 것은 사용한 만큼 요금을 받아낼 수 있다는 눈앞의 이익 때문이었다.

정부와 통신사업자들의 근시안적 행태는 우리나라 휴대폰 사용자들을 잘못 해서 인터넷 접속 버튼을 누르면 무조건 끄고 보는 '무선인터넷맹(盲)'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폰 도입 몇 개월 만에 KT의 무선인터넷 데이터 트래픽이 100배 이상 늘어날 정도로 우리 소비자들의 욕구가 강하다는 점이다. 한국을 단기간에 IT 강국으로 떠오르게 만든 가장 큰 자산은 국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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