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이오지마 전투 이끈 구리바야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반격으로 전환한 이후 일본군보다 많은 사상자를 낸 유일한 전투가 1945년 2월 19일부터 시작된 이오지마 전투였다. 미군 측 사상자는 2만8천686명(전사 6천821명, 부상 2만1천865명), 일본군 전사자는 수비 병력의 90%를 넘는 2만219명이었다. 이에 기겁을 한 미국은 일본 본토 상륙을 포기하고 원자폭탄 투하로 전략을 바꿨다.

이 전투를 이끈 일본 측 지휘관이 구리바야시 다다미치(栗林忠道) 중장이다. 나가노현 출신으로 1911년 일본육사를 졸업했다. 조선인 출신으로 종전후 전범으로 처형당한 홍사익 중장이 동기생이며 중일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일본 천황으로부터 금사(金賜)훈장을 받은 김석원 대좌가 1기 후배이다. 미국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돼 하버드대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이때 미국의 국력을 실감한 그는 훗날 '미국과 벌이는 전쟁은 절망적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1944년부터 이오지마 수비대를 지휘했다. 일본군은 지하진지를 구축하고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는 전투에서 패한 다른 일본군 지휘관이 그러했듯 1945년 오늘, 남은 부하 300명과 함께 최후의 돌격으로 생을 마감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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