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지구별 소풍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살아생전뿐 아니라 사후에도 무소유와 맑은 가난을 실천함으로써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신 법정 스님, 바보처럼 '너희를 위하여 모두를 위하여' 삶을 사신 김수환 추기경,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됨을 삶으로 보여 주며 죽는 날까지 희망을 노래했던 장영희 교수. 우리에게 빛과 희망이었던 그분들을 떠나보내며 잠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지구별 소풍'이라는 동화가 있다.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봄이 엄마와 봄이의 이야기다. 봄이 엄마는 어린 봄이가 '엄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되어 쉽게 눈을 감을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점점 더 드리워지고, 마음이 급한 봄이 엄마는 어린 딸의 두 손을 꼭 붙잡고 묻는다.

"봄이야, 얼마 전에 유치원에서 소풍을 갔다 왔지? 어땠어?"

"무척 재미있었어. 놀이 공원에서 놀이 기구도 타고, 장기 자랑도 하고, 보물찾기도 하고……."

"근데 그 놀이 공원에서 살 수 있어?"

"아니, 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래, 맞아.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지구별에 소풍을 온 것이란다. 소풍을 마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그 집은 어디에 있는데?"

"하늘나라에 있단다."

"하늘나라? 거기엔 어떻게 가? 비행기 타고 가?"

"봄이 생각나니? 가끔 네가 뛰어놀다 지치면 소파나 거실에서 잠들잖아. 그런데 깨어 보면 어디에 있었지?"

"내 방 침대에."

"어떻게 된 걸까?"

"엄마나 아빠가 나를 안아 침대로 옮겨 준 거잖아."

"그래, 그것처럼 지구별 소풍을 마친 사람들은 천사가 와서 하늘나라로 옮겨 준단다. 엄마는 지금 지구별 소풍을 마쳐서 천사가 데리러 올 거야. 우리 봄이가 있어서 엄마는 지구별 소풍이 아름답고 행복했단다. 봄이도 지구별 소풍을 즐겁게 보내고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엄마가 먼저 가서 기다릴게……."

몇 해 전에 어린이 철학동화를 기획하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동화를 써야 했다. 그런데 막상 펜을 들고 보니 어린아이들에게 이 어려운 주제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 번쩍 떠올랐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시에서 '지구별 소풍'이라는 제목을 얻었다. 천상병 시인, 권정생 동화 작가,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장영희 교수는 지구별 소풍을 아름답게 마친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지구별은 좀더 맑고 향기로운 세상이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고, 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우리의 삶이 소풍임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무소유와 나눔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암 투병 중인 소설가 최인호의 신작 에세이 '인연'에 나오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죽음이 이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때가 되었으며, 수많은 이별 연습을 통해 나 자신도 존 던의 시처럼 내 영혼에게 조용히 '이제 그만 떠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지혜와 경륜을 배울 때가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삭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매일 매시간 죽음의 그림자와 동행하면서도 그것을 잊고 산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산다. 우리에게 허락된 매일의 삶이 소풍임을 알 때 하루를 전 생애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지구별 소풍이 끝나는 날, 우리도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류일윤 글뿌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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