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재사 양수는 정확한 판단으로 조조에게 발탁됐다. 유비를 치기 위해 대군을 끌고 한중으로 향한 조조의 진영에 양수도 참가했다. 전투는 조조에게 불리했다. 날이 갈수록 도망가는 군사가 늘어나 조조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어느 날 저녁식사에 닭고기 요리가 나왔다. 닭갈비를 집어 든 조조는 계륵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날 밤 암호는 계륵이었다. 암호를 듣고 양수는 '먹을 것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조조의 마음을 알아채고 서둘러 짐을 쌌다. 주위 동료들에게도 짐을 싸라고 권했다. 마음을 들킨 조조는 양수의 목을 벴다.
양수의 판단은 정확했지만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조조의 복잡한 마음을 말로 드러낸 잘못 때문이었다. 숨기고 싶은 약점을 들킨 조조에게 무안을 준 대가였다. 하나는 알되 둘은 모른 양수의 가벼운 입이 자신의 목을 자른 것이다. 한마디 말이 재앙을 부른 일은 역사에 숱하게 기록돼 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며 말조심을 경계한다.
프랑스 루이 11세는 불길한 예언으로 시민들을 현혹시키는 예언가를 붙잡았다. 왕은 예언가를 죽일 참이었다. '네가 미래를 안다니 너는 언제까지 살 것 같으냐'고 물었다. 예언가는 이렇게 답했다. '정확히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폐하보다 3일 전에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루이 11세는 끝내 이 예언가를 죽이지 못했다. 그를 죽이면 3일 뒤에 자기도 죽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탓이었다. 한마디 말이 절체절명의 목숨을 살린 예를 보여주는 유머다.
고위직 인사들이 했다는 황당한 말로 세상이 시끄럽다. 여당 원내대표가 잘나가는 절의 주지를 두고 했다는 말의 실체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했느니 안 했느니 따지는 자체가 황당하다. 여당 고위직 인사의 말이 직영 사찰 지정의 압력으로 이어졌는지 여부를 떠나 논란을 빚는 양쪽의 말 모두 할 말로는 어딘가 어색하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정치인은 특히 말로 일어서고 말 때문에 추락한다. 빛처럼 빨리 흩어지는 말의 무서움은 뿌린 대로 거두게 한다. 실언은 잘나갈 때 나온다. 모든 게 뜻대로 된다고 여기는 순간 아무렇게나 뱉은 한마디가 목숨을 앗아간다. 더는 말빚을 지지 않겠다며 절판을 부탁한 법정 스님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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