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머리·배 아파…우울증 증세까지
# 이모(15·여)양은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생각지도 못했던 정신과 상담을 몇 차례 받으면서 본인이나 가족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이양은 "어느 날부터 아무 이유 없이 머리와 배가 아프고 밥맛도 없었다"며 "의욕 상실로 인해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쪽지시험에서는 성적이 상위권을 기록하는데 중간·기말고사에서는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그런 상황이 되풀이되자 스트레스가 급격히 누적됐다. 그녀는 "중1 때와 달리 중2가 되면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심해졌다"고 했다. 이전까지 성적에 대해 크게 이야기하지 않던 부모도 잔소리가 심해지고 친구들도 고교 선택과 성적에 많이 신경 쓰는 등 주위 환경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 공부·친구 관계 불안감…사춘기의 절정기
# 중학교 2학년생인 김모(14)군은 최근 재미삼아 인터넷에 떠도는 '중2병 테스트'를 해 보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김군은 "황당한 예문도 있었지만 평소 남들과 다르다거나 깡패를 우상으로 생각하는 등 수긍이 가는 예문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 중에서 테스트에 나온 예문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김군은 "친구들과 재미삼아 테스트를 하면서 웃고 떠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중 2라는 시기가 사춘기의 절정기인데다 공부와 친구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강한 때라 중2병 같은 이야기가 떠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라고 했다.
중학교 2학년은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입시 스트레스를 겪는 고교생이나 중학교 3학년생에 비해 여러 면에서 느슨하게 보였다. 하지만 최근 입시 환경이 급변하면서 중2가 진로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시기로 여겨지고 있다. 그만큼 성적과 진로 등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한창 사춘기인 중학교 2학년생 중에는 여러 가지 환경 변화로 혼란과 방황을 겪는 경우가 적잖다. 얼마 전에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한 '중2병'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가 되고 있는 중2에 대해 알아봤다.
◆낀 학년에서 핵심 학년으로
종전에 중2는 사실상 '낀 학년'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막 넘어온 중1은 무엇보다 학교 생활 적응기로 완전히 달라진 학교 환경 때문에 본인뿐 아니라 부모도 신경을 많이 쓰는 시기다. 중3은 고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보니 성적이나 학교 생활에 관심이 컸다. 이에 비해 중2는 학교 적응도 어느 정도 끝났고 1년이란 시간적 여유 때문에 공부에 대한 열의와 주위 관심도 다소 덜했다. "학창 시절 가운데 중2 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어느 때보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고 놀러도 많이 다닌 것 같은데 요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김은석(41)씨의 이야기에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요즘은 중2는 예전과 180도 달라졌다.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맞춰 진학 준비를 해야 하는 핵심적인 시기로 바뀌었다. 내신성적 관리에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학 진학 못지않게 인생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는 때가 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고교는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자율형사립고를 필두로 한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인해 고교 입시도 대학 입시에 비견될 정도로 회오리에 빠져들었다. 때문에 중2때 자신이 진학할 고교를 선택하고 그에 맞춰 준비하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진다. 대구만 해도 내년에 자율형사립고 4개, 신설 영재학교와 과학고, 외국어고, 마이스터고 등 일반계고와 다른 형태의 학교가 크게 늘어난다. 전국 단위 모집을 하는 영재학교, 자립형사립고, 자율고 등을 포함하면 학생들의 진학 범위는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다.
문제는 이들 고교의 학생 선발 방식이 지금껏 확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여부와 비율, 단계별 전형 방법 등이 해마다 들쭉날쭉한 데다 자율형사립고는 마지막 단계에서 '2배수 가운데 추첨'이라는 행운까지 작용하니 학생들로서는 답답하고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교육과정 변화는 학생들이 체감하기 힘들지만 교육계에서는 더 중요한 문제로 보고 있다. 대구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이희갑 장학관은 "2011년부터 선택형 교육과정인 2009년 개정교육과정'으로 전환되면 지금의 중학생들이 고교에 진학했을 때 교육환경이 지금과는 큰 차이가 난다"며 "중학교 때 자신의 진로에 대해 큰 줄기를 잡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2가 진로 선택과 준비에 핵심적인 시기가 된 것도 이런 이유다. 중3이 돼서 진로를 선택하면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내신성적이나 교과 심화학습, 입학사정관제 자료 등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중2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중2 이모(15·대구 범어동)군은 "공부 좀 하는 친구들 사이에 자사고나 특목고에 들어가지 못하면 들러리가 될 거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며 "중3이 되면 자기 위치가 어느 정도 정해지기 때문에 그때는 늦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공부 압박으로 진로 설계 부족해
중2들이 받는 공부 압박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경대사대부중 박미숙 교사는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던 부모들까지 자녀가 중2가 되면 사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고교 선행학습을 하는 학생들도 상당수 생겨난다"고 말했다. 중2인 주성국(14)군은 "1학년 때는 몰랐는데 2학년에 올라오면서 친구들이 특목고나 자사고 등의 진학할 고교나 성적 등을 두고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며 "1학년 때와는 교실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했다.
고교 입시 부담으로 성적을 중시하다 보니 실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중2인 김선주(14·여)양은 "중2가 자신의 인생을 처음으로 설계해야 하는 시기라고 들었는데 학교와 학원 왔다갔다하기 바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가 없다"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무조건 좋은 고교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교사들은 진로·고교 선택과 진학 준비에 학부모의 역할이 중시되면서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학교 차원의 진로 지도와 진학 정보 제공 등에 한계가 있어 학생 개개인의 고민 해결을 도와주고 주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는 역부족인 게 현실. 때문에 학부모가 자녀의 진로를 사실상 결정하고 인터넷과 사교육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은 뒤 자녀의 학원 스케줄 하나하나를 직접 관리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박 교사는 "전반적으로 학교의 진로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강화되고 있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꾸준히 적용시키기는 무리가 있다"며 "빡빡한 일정 속에서 충분한 시간을 내기 어려운 학생들이 스스로 이런 프로그램들을 소화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사춘기때 겪는 내적 고민이 외적인 공부 압박과 충돌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우울증을 호소하거나 일탈 행위로 비행을 저지르는 학생들도 많이 생겨난다. 박 교사는 "의욕을 갖고 공부에 매달려도 막상 성적이 나오지 않아 스스로 힘들어하는데 주위에서 더한 부담을 줘 우울증이나 의욕 감퇴를 겪는 학생도 적잖다"고 했다. (재)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 진혜전 통합지원팀장은 "요즘은 사춘기가 빨라져 중2때에 절정기를 맞는다"며 "중3이나 고교생보다 중2때 비행이 가장 잦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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