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은 예년에 비해 유난히 더디게 오고 있다. 경칩이 지나고도 눈이 여러 번 내렸고 꽃샘추위는 코끝이 시릴 만큼 기승을 떤다. 아침 저녁으론 아직 겨울 코트가 필요할 정도로 쌀쌀하게 바람이 불고 봄의 불청객 황사까지 찾아와 바깥 외출이 꺼려진다.
이제 기다리던 봄이 오면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먼저 우리에게 그 소식을 알려줄 것이다.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op.8 '사계'의 1번 E장조 '봄'(La Primavera)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올 테고, 베토벤 교향곡 op.68 F장조 '전원'(Pastorale)이 귓가를 맴돌게 될 것이다.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피고 겨울을 앙상한 가지로 버텨낸 가로수에 연초록 새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아름다운 배경음악과 함께 맘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6일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유일하게 '음악의 성인'(聖人)이라고 불리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2.17-1827.03.26)이 1827년 세상을 떠난 날이다. 베토벤은 9개의 교향곡, 16개의 현악4중주와 32개의 피아노 소나타, 그 외에 수많은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하이든(Franz Josep Haydn; 1732.03.31-1809.05.31)처럼 평생을 통해 고전주의 음악양식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교향곡'을 소나타 형식으로 완성시키지도 않았고,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01.27-1791.12.05)처럼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불릴 만큼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테너 가수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아들을 모차르트처럼 신동으로 만들려는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비올라 등의 교습을 받는 기회를 제외하면 젊은 날의 베토벤이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계몽주의 사상의 유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베토벤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걸어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다. 1792년 당시 유럽 문화의 중심도시였던 비엔나로 진출한 베토벤은 이미 대가의 반열에 선 하이든과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08.18-1825.05.07)에게 부족한 음악기법을 배워가면서 자신을 세상에 알려나간다. 베토벤의 비엔나 음악계 첫 데뷔는 작곡가로서가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였는데, 당연히 뛰어난 실력은 곧 인정받게 되었다. 1795년 이미 몇 년 전에 써두었던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1번인지 2번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을 직접 연주하면서 비엔나 대중들 앞에서 공식 연주회를 가졌고,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그리고 연주회 직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번호를 붙인 첫 번째 작품, 피아노 트리오 3곡을 op.1로 묶어서 출판했다. 이후 전개된 베토벤의 나머지 생애는 아마 우리 모두 여러 가지 책과 기록으로 숨겨진 이야기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로크 시대 이후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역사 속에는 위대하고 천재적인 작곡가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베토벤에게만 붙여진 '악성'이라는 칭호는 바로 인간 베토벤이 걸어온 인생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그리고 시련과 고난 앞에서 보여준 용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이 봄, 그의 인생을 담고 있는 '전원' 교향곡의 한 악장이나, 바이올린 소나타 op.24 F장조 '봄'을 듣는다면 이 봄이 더욱 힘차고 새롭게 열릴 것 같다.
최영애 (영남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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