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가사부담부터 조금씩 나눠 가지고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생겨난 신조어들이 참 많다. 회사에서 밀어내기 전에 스스로 명예롭게 퇴직한다는 명퇴. 기업 측의 고용 축소로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힘든 이십대들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나가라는 눈치를 줘도 얼굴에 철판으로 팩하고 열심히 회사에 다녀 50~60세가 되어 퇴직하는 사람은 도둑이란 뜻의 오륙도. 가벼운 유머로 웃고 넘기기엔 왠지 서글퍼지고 씁쓸한 마음이 가득 차는 것은 그 신조어와 유머속에 어떤 모양새로든 내가 속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새롭게 신조어가 생기면서 가까운 시일 내엔 국어사전에서 퇴출(?)될 수 있는 낱말이 '정년퇴직'일 것이다. 근무 능력과 관계없이 일정한 나이가 되어 당연하게 퇴직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정년퇴직. 정년퇴직을 경험한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월급쟁이의 소원이자 큰 바람일 것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 조직의 일원이 되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조직을 위해 충성을 해왔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 '정년퇴직'이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 볼 수 없을 경우도 생기겠다는 상황에서 또 여태껏 조직을 위해 충성을 바친 시간들 보다 앞으로 충성을 바칠 시간이 적게 남아있다는 시점에서 작지만 알찬 깨달음을 얻었다.
사회생활,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집채같이 크고 거친 파도와 싸우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가족들을 위해 힘들게 직장생활을 한다는 얄팍한 핑계로 20여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벽에 못하나 박아주지 않았고 애들 기저귀 한번 갈아준 적 없거니와 심지어 이사하는 날까지도 휴가를 반납하고 회사에 충성을 다한 간 큰 남자였다.
정년퇴직은 인생 일모작이 끝나고 인생 이모작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하겠다. 다른 이들은 인생 이모작을 어떻게 계획하는지 모르지만 퇴직 후 찾아오는 불청객인 역할 상실에서 오는 허전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실속있게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의 책임이 아님을 강조했던 집안의 가사 일을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나의 인생 이모작은 아내에게서 가사의 부담을 조금씩 나누어 갖는 것부터 시작할 것이다.
손진호(대구 중구 동문동)
♥나만의 시간 생각하니 흥분
44년 6개월의 직장생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4번하고도 6개월을 더 직장 생활하고, 2년 전에 정년퇴직 하여 전업 주부의 대열에 끼였다. 퇴직과 동시에 집에 있게 되면서 한가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너무나 흥분되었다.
늘 오전 5시에 기상하여 식구들을 위한 밥상 준비와 3남매 도시락과 남편 점심 도시락까지 챙기며 출근 준비를 하느라 늘 정신없이 쫓기는 삶을 살았었다. 그러다 너무나도 넉넉한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니깐 그 행복한 충만을 말로 글로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했다. 미리 준비해 뒀던 퇴직 후 하고 싶은 목록들을 챙겨보며 제일 먼저 실천한 것은 남편과 함께 하는 운동이었다. 지금도 남편과 같은 취미생활을 하며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고 있다.
이제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나만의 여유를 맛보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제 곧 일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퇴직 후 하고 싶은 목록 두 번째 일을 시작해야할 것 같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는 삶이다. 자원봉사나 그에 상응되는 일을 찾아서 남은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좀 더 보람되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러기위해 무엇보다도 좀 더 건강을 다져야 할 것 같다.
김연희(대구 남구 봉덕3동)
♥퇴직 우울증 딛고 생선 파는 아저씨
집에 가는 길 인도에는 과일 채소를 파는 노점상이 몇 군데 있다. 늘 싱싱한 물건으로 진열해 놓기에 바쁘더라도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필요한 식재료를 가끔 사기도 하는 이 곳에 어느 날부터인가 깔끔하게 차려 입은 중년 부부가 생선을 팔고 있었다. 시장보다 더 싱싱하다는 입소문에 시간을 아끼려는 주부들이 몰렸고 나도 솔깃해 고등어 한손을 샀다. 입소문처럼 비린내가 적었으며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 뒤론 맛에 반해 자주 들르곤 했는데 갈 때마다 깔끔한 차림에 생선을 다듬는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실례를 무릅쓰고 여쭈어봤더니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했다. 몇 달 전만 해도 든든한 직장에 다녔고 집사람은 취미 생활하면서 살림에만 전념했는데 평생 내 삶의 터전처럼 생각하고 다녔던 직장이 서서히 어려워지다 보니 스스로 조기퇴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막상 퇴직을 하고보니 기술이 없어 아무 것도 쉽게 덤벼들 용기가 없었고 가장으로서 가족 얼굴조차 똑바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아무것 도 할 수 없다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 우울증까지 왔는데 가족들이 희망을 안겨주었다면서 아내를 바라보는 눈빛이 애틋했다.
처음 생선 장사 시작할 땐 움츠러들고 사람들 얼굴조차 마주할 용기가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생선 지느러미를 다듬고 했는데 이젠 고객들도 많이 확보했고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얼굴을 마주보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울타리마다 노랗게 물들어가는 개나리꽃처럼 때묻지 않은 화사한 미소를 그려주시던 아저씨는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투자할 각오가 있다면 뭐든 성공할 수 있다" 고 했다.
박정연(대구 남구 대명3동)
♥온갖 세파 넘어오신 아버지 파이팅
올해 여름, 정년퇴직을 앞둔 아버지께.
어린 시절 아침 풍경을 떠올리면 아버지는 늘 출근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유난히도 성실했던 아버지는 단 한 번의 결근도 없이 그렇게 매일 출퇴근을 하셨지요. 그때는 그 모습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한 남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기 이전에 저희에겐 늘 아빠였으니까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어가니 아버지 역시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가게 됩니다. 민원이 잦고 늘 사고를 처리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스트레스가 극심했을 법 한데도 가족들에겐 내색 않고 지금까지 31년간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다섯 가족이 별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정년 퇴직을 앞두고 심경이 여러가지로 복잡하시지요? 이젠 뱃살을 줄이기 위해 술도 줄이시고 건강도 챙기셨으면 해요. 엄마와 알콩달콩 재미나게 정도 내시고 여행도 가시고 말이지요. 아직은 일손을 놓기가 아쉬우실테지만, 당분간 30여년 일해온 당신에게 휴가를 주세요. IMF 외환 위기의 파고도, 각종 위기도 현명하게 헤쳐오신 당신이 계시기에 세 남매는 사회에서 자리 잡아 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지요. 저희도 아버지의 성실함을 늘 생각하겠습니다. 전국택시공제조합 대구지부 최탄 부지부장님, 파이팅!
최정임(대구 수성구 범물동)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선옥(대구 수성구 두산동)
다음주 글감은 '봄이 오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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