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그린존

'오락성+개념' 갖춘 전쟁영화, 이라크전을 비웃다

그린존
그린존

2003년 3월 19일 미국의 공습을 시작으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악의 축' 사담 후세인에게 48시간의 최후통첩을 보낸 뒤 동맹군과 함께 바그다드 남동부에 미사일 폭격을 가했다.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였다.

이라크 전쟁의 대외적인 명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신세대 첩보물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가 감독한 '그린 존'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여부를 쫓아가며 이라크 전쟁의 허상에 포커스를 맞춘 전쟁 스릴러물이다. '본 아이덴티티' 등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이 주연이며 본 시리즈에서 보여준 역동적인 카메라워크와 긴장감 넘치는 전투신 등으로 무장해 문제의식과 함께 오락성을 갖춘 영화다.

화염과 총성, 폭발음과 비명으로 가득 찬 바그다드. 안전한 곳이라고는 미국이 이라크 임시정부를 세운 옛날 후세인의 바그다드궁, 이른바 그린 존뿐이다.

미 육군 로이 밀러 준위(맷 데이먼)는 대량살상무기가 있는 곳을 찾아내 이를 제거하는 특수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확실한 정보라는 말에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지만 매번 허탕을 친다. 그는 엉터리 정보에 왜 그렇게 신뢰를 하고, 또 제보자는 누구인지 의문을 갖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의족을 한 이라크인 프레디(칼리드 압달라)가 도움을 주겠다며 찾아온다. 밀러는 그의 말대로 한 가정집을 급습해 후세인 정부 실력자들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단서를 포착한다.

부시 정부는 WMD를 제거하겠다고 전쟁을 일으켰다. 이라크전이 끝난 뒤 미 대통령 직속 WMD 정보능력위원회는 미국 정보기관의 WMD 정보가 완전히 틀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결국 부시 정부는 있지도 않은 WMD를 가지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그린 존'은 사기극에 좀 더 적극적인 사기 속셈을 덧댔다. 미국 정보기관이 의지한 마젤란이란 제보자는 사실 이라크 고위 장성이며, 이미 WMD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전쟁을 일으킨 후 그를 없애려고 한다는 설정을 깔았다. 정의감에 불타는 미군 준위는 이 추악한 진실을 목도한 후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 형사처럼 목숨을 내놓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혼자 종횡무진한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북아일랜드 민간 시위 참극을 그린 '블러디 선데이'로 주목을 받은 영국 감독이다. 정치성향이 짙은 그가 할리우드로 넘어와 본 시리즈와 같은 오락 액션물을 찍으면서 무뎌졌나 했지만, '그린 존'을 통해 다시금 성향을 드러낸다. 특히 핸드 헬드(카메라를 들고 찍는 기법)를 통해 마치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전해준다. 이라크전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 중 당시 바그다드 현장의 모습을 가장 스펙터클하면서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영화가 아닐까 여겨진다.

그린 존은 미군 사령부와 정부 청사가 자리한 안전지대다. 밖에서는 물이 없어 아우성을 치는데, 고급수영장에 늘씬한 비키니 미녀들이 다이빙을 하고 호화식당과 마사지 시설에 나이트 클럽이 있던 곳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금지된 술까지 허용된 공간이다.

'그린 존'은 전쟁 속에서도 존재하는 이런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의 자유'를 위해 벌인 전쟁이지만, 거기에는 자유가 없고 또다시 부족 간 혼란만 가중된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이미 이라크 전쟁의 목적이 이라크의 자유보다는 중동지역에 친미 블록을 구축해 원유를 확보하고, 9·11테러로 위축된 미국식 영웅 심리를 촉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선이다.

넓게 보면 '그린 존'의 태생에도 이런 속셈이 없지는 않다. 할리우드 영화는 곧잘 미국의 치부를 활용한 영화들을 내놓고 있다. "이라크의 운명은 이라크인에게 맡겨 놓으라"는 프레디의 절규가 다소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미국 정보기관 총책의 멱살을 잡을 수 있는 일개 군인이 영화 밖에서 가능이나 할까.

그럼에도 '그린 존'은 오락적으로 뛰어나다. 남성적 취향이 한껏 배어 있는 감독의 연출력에 진보적인 성향의 배우 맷 데이먼의 역할, 그렉 키니어 등 중견 배우들의 활약, 할리우드 최고 이야기꾼인 브라이언 헬겔랜드의 시나리오 등이 버무려져 미식 축구의 룰처럼 간결하고 힘 넘치게 그려낸다. 남성 관객에게는 빈약한 봄 극장가에 볼 만한 오락물이다. 115분. 15세 관람가.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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