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상고심사부

우리나라 14명의 대법관(대법원장 포함)들이 연간 처리하는 사건 건수는 1인당 2천700건(2008년 기준). 휴무일을 제외하면 하루 11.2건꼴이며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소송 당사자들은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 가며 상고를 하지만 이런 사정 때문에 소송 결과를 당해 연도에 통보받는 것은 꿈도 못 꾼다. 3년을 넘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의 3분의 2 이상이 재판도 받아보지 못하는 '심리 불속행 기각'을 당하는 실정. 당연히 사법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 한나라당이 사법 개혁 차원에서 대법관 증원을 10명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법원 조직 개편 방안을 발표하자 이에 강력 반발한 대법원이 이번 주 '상고심사부'를 설치하는 사법 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대구고등법원을 비롯한 전국 5개 고법에 상고심사부를 만들어 사법 수요에 대비하자는 것.

하지만 이런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고 제도화될지는 의문이다. 국회나 대법원이 저마다 국민들의 불만이 높을 때는 사법 제도 개선 목소리를 높였다가 여론이 숙지면 슬그머니 거둬들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고심사부와 비슷한 제도가 4년 전에도 집중적으로 논의된 적이 있었다. 고법이 있는 지역에 상고부를 설치하기로 공론화를 했지만 정치권의 어정쩡한 태도와 법원 내부의 반발 때문에 유야무야됐다. 당시 지역 법조인들은 상고부가 설치되면 사건 처리 기간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소송 비용 감소도 불문가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서울의 변호사들이 취급하는 상고 사건 수임료는 지방보다 3~8배 높은 실정. "소송 비용과 시간 낭비를 줄이고 시대적 조류인 지방분권화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고법 상고부 설치가 필요하다"는 지방 변협의 성명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법 상고부 설치는 논의 2년여 만에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고, 대법원 및 재경 법원을 중심으로 한 조직 이기주의가 정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꼬리를 물었다.

이번에 다시 법원 조직 개편 논의가 시작됐지만 또다시 그들만의 말장난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국민들은 대법관 증원이 됐든, 상고심사부가 됐든, 고법 상고부가 됐든 좀 더 편하게 재판 받고 재판 결과를 신속히 알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권한을 가진 자들의 영역 다툼에 부아가 치민다.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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