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교장 전상서

절대 군주 나폴레옹이 어느 시골 학교를 방문했다. 교장은 나폴레옹에게 교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줄 것을 요청했다. 수행 참모들은 무엄한 교장에게 눈총을 주었으나 정작 나폴레옹은 조용히 교장의 뜻을 받아들였다. 참모들도 따라 했다. 교장은 모자를 그대로 쓴 채였다. 학교 안내를 마치고 교장실에 들어선 교장은 비로소 나폴레옹에게 무례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학생들 교육상 적어도 학교 안에서는 교장이 최고 권위자로 비쳐져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감동이 푸짐한 에피소드다. 기립 박수는 꼭 오케스트라 연주 끄트머리에 커튼콜을 위해서만 치라는 법이 없다. 교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처신의 바이블이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본분과 체통을 지키라는 것이다.

우리네 몇몇 교장의 체면이 요즘 말이 아니다. 아이든 학부모든 교장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교장의 권위가 초췌해진 연유는 숭고한 명예를 싸구려 이권과 맞바꿔 온 까닭이다.

옛날이라면 교장은 뼈대 있는 선비일 터. 그래서 그 댁의 딸은 그저 계집아이가 아니라 규수라 불렸다. 삶의 방식 또한 격조가 있어 밥상에 오른 생선 한 토막도 뒤집어가며 발라먹지 않고 일부러 한쪽을 남겨 가솔인 머슴 차지가 되게 배려했다. 여염집의 일반 백성들도 감나무 꼭대기의 홍시는 까치에게 남겼다.

비리와 청렴의 기로에서 '현대판 선비'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닐까. 어설픈 관례가 또 핑계인가? 한평생을 교직에 몸담아 교장 선생님 택호를 단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인가!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도입된 방과 후 수업마저 비교육적인 흥정거리로 여겼다면 과연 교직의 양심과 교장의 역할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계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킨다. 교장 선발 시스템부터 자격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메추리알을 암탉이 품는다고 병아리로 부화되지는 않으니까. 또 처벌은 지엄해야 한다. 제도는 의식을 강제하니까. 예로부터 '조선 반도는 산수가 수려하여 인재는 많이 나지만 놀 땅이 적다'고 했다. 교육계 밖으로도 두루 찾아 나서라. 대낮에 등불을 밝힌 디오게네스처럼. 뉴스를 보노라면 몇몇 교장과 교육청 간부가 서로 뒤질세라 비리의 바벨탑 쌓기 경쟁을 벌여온 듯하다.

오늘 따라 전국의 교육청 인터넷 사이트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칭찬합시다' 코너가 덧없어 보인다. 뉴스에 나오는 몇몇 교장 선생님들이 '나폴레옹의 교장'으로 환골탈태한다면 아이든 학부모든 교장 선생님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겠는가.

김일부<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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