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국소(局所) 온난화

지구 온난화가 근간에 세계적인 이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너무나 요란스럽고, 경고가 지나친 듯하여 조금은 무감각해지고 싫증이 날 정도다.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지금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제는 저출산과 그로 인해 야기될 인구감소의 문제다. 당면하고 있는 이 두 가지의 뜨거운 이슈는 일견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연관성을 걱정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지구 온난화가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는 사람들의 성화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그 근거는 이렇다. 남성의 고환은 체온보다 1~2℃ 낮게 유지되어야 하며, 만일 그보다 높아지면 정자의 활동성이 떨어지고 남성호르몬의 생산이 저하되어 불임과 성기능 장애의 원인이 될 수가 있다. 맞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의학적으로 뒷받침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여자는 아래를 따뜻하게 하고 남자는 시원하게 하라고 했다. 난롯불을 쬐어도 남자들은 돌아서서 쬐곤 한다.

그렇지만 지구가 따뜻해진다고 과연 남성의 고환까지 따뜻해질까? 그렇다면 겨울과 여름의 체온이 달라야 하고, 여름에는 겨울보다 임신도 어렵고 성기능도 확연히 떨어져야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왜 그럴까? 인간은 항온동물이기 때문이다. 주변 기온에 따라 체온이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거기에다 고환은 라디에이터 그릴처럼 주름 잡힌 표면 등의 덕으로 체온보다 시원하게 유지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지구의 온난화가 불임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온난화'로 인한 불임이나 성기능 저하 등의 우려는 없어진 것일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국소(局所) 온난화'는 '지구 온난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실제로 심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 국소 온난화의 대표적 주범은 노트북 컴퓨터다. 우리나 일본에서 '노트북'이라고 하지 서구에서는 '랩탑'이라고 부르는데 무릎 위에 두고 쓴다는 말이다. 대체로 남성들은 앉아 있을 때 여성들보다 다리를 더 벌려서 허벅지 사이를 시원하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노트북 컴퓨터를 쓸 때는 다르다. 노트북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다리를 잔뜩 힘주어 오므리게 된다. 혹시 그 자세가 궁금하면 텔레비전에서 기자회견장에 몰려 앉은 기자들을 보면 된다. 이렇게 통풍을 차단하고 허벅지 사이의 온도를 올리며 고환을 압박하는 자세에서 설상가상으로 노트북의 바닥은 쓸수록 뜨거워진다.

이쯤 되면 국소 온난화가 아니라 '온열화'가 되는데 실제로 2004년에 뉴욕 주립대에서 '랩탑 컴퓨터 사용자의 고환 온도 상승'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국소 온난화야말로 인구감소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생각은 비록 크게 '지구'에 두더라도 행동은 당장 '국소'부터 하는 것이 후세를 위해서 좋겠다. 노트북은 책상 위에 올리자!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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