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우린 쾌속세대가 있어 행복하다

유난히도 매섭고 길었던 겨울도 파릇파릇 피어오르는 새싹과 푸른 들녘에 자리를 내어주며 어느덧 봄이 왔음을 짐작케 한다.

우린 찬바람이 일던 지난달, 클레오파트라가 그렇게 좋아했던 붉은 장미보다 더 아름답고 열정적인 새싹들을 먼저 볼 수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이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겨울 스포츠 강국으로 탄생하게 된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말이다. 밴쿠버의 하늘에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벅찬 감동이 밀려왔고, '시건방 춤' 세리머니에 또 한 번 웃을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국내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며칠 전 일부 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눈살 찌푸려지게 하는 소식을 접하면서 대한민국의 장래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러한 걱정을 불식시킨 진정한 우리 젊은이들의 도전에서 큰 희망을 보았기에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들을 '쾌속세대'라 부르며 엔도르핀이 충만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쾌속(快速)세대'란 한자에서 '쾌'는 '즐겁다/상쾌하다/즐기다'등의 의미와 '속'은 '빠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쾌속세대는 속도를 즐기며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다. 예전의 잣대로는 버릇없는 애들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감과 자유분방함, 도전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그들의 여유에 우리 기성세대가 가지지 못한 점을 볼 수 있다. 우리 기성세대들에게도 '빨리빨리'라는 문화가 있지만 진정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김연아, 이승훈 선수를 비롯한 이번 동계올림픽의 우리 선수들뿐 아니라 14세 때에 학교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예술 세계에 발을 내딛은 피아니스트 진보라, 어린 나이에 프로구단에 입단하여 지금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중인 이청용 선수 등 많은 신세대들은 무한 도전을 즐기면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높이고 있다.

필자는 쾌속세대의 성공 이면에 녹아있는 몇 가지 시사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선 단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경쟁자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선수들의 신체 상태와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학적인 시스템과 스케줄에 의한 훈련은 자기 자신을 콘트롤할 수 있는 제어능력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 세계적인 선수와의 경기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 선수 경기에 대한 전문분석관의 장단점 파악은 여러 가지 돌발적 상황에서의 효과적 대처 능력을 길러 주었다. 우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들이나 선수들에게 '열심히 하라. 죽도록 하라'고 주문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조건 열심히'의 방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경험했었다. 과학적 시스템과 전략에 근거한 체계적인 연습이 무한경쟁 속에서의 하나의 해답이다.

그리고 소통과 융합이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사회, 정치, 과학 등 여러 방면에서 소통과 융합에 대하여 강조해왔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는 쇼트트랙 선수들과의 공동 훈련을 통해 코너워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고,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과의 훈련을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강한 스피드와 체력을 길러 나갔다. 그리고 메달을 딴 후배 선수들은 그 모든 공(功)을 선배 선수와 코치진에게 돌리는 모습에 배려와 소통의 가슴뭉클함을 또다시 느낄 수 있었다. 종목 및 분야, 성별을 떠나 융합으로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고 선후배, 코치진 간의 소통은 도저히 넘지 못할 것이라는 세계의 벽을 허무는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자유스러움과 개방성이다. 메달을 딴 선수는 멋지게 춤을 추면서 즐길 수 있었고 메달 획득에 실패한 대부분의 선수들 또한 예전같이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울지 않았다.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두고 환한 얼굴로 다음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여유가 있었다. 이들 선수들의 자유스러움과 개방성에서 역동성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금메달만 기억하는 우리의 결과 지향적인 사고에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목표를 완수하기 위한 피와 땀의 과정을 너무 쉽게 간과한 측면을 반성해본다.

이제 생존(生存)이라는 단어에 목숨을 건 시대는 지났다. 지난 세기 동안 걸어온 우리의 산업화, 민주화의 기반에 쾌속세대의 신선한 문화를 융합하여 건전한 발전 동력을 만들어 가야겠다.

이인선 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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