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신하들에게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이 드나드는 문이며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은 것이다.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어느 곳에 있든지 편안하리라'라고 새긴 신언패를 차고 다니게 했다고 한다. 비록 연산군은 충신들을 억압하기 위해 명심보감의 글귀를 악용했으나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에게 말은 조심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최근까지도 고위층 인사들이 막말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거나 사퇴를 요구받는 일들이 있었다. 과거에 비해 발달한 인터넷과 향상된 접근성으로 인해 정치인들의 실언은 즉각적으로 유포되며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들의 특권의식이 말을 경솔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갖고 있던 권력마저도 잃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권력자의 말이 불러올 사회적 파장과 파급력은 일반 시민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공인이고 한 국가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권력자의 설화가 특정 집단에 대한 폄하로 나타날 때 그 계층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내부 분열을 조장하므로 문제시된다. 문제는 비단 국내에서뿐만이 아니다. 세계 무대에서 정치인들의 말과 에티켓은 해당 국가를 평가하는 주요 요소이다.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이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했던 것처럼 국내'외에서의 실수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권력자들의 말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어떤 언행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만과 독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막말은 대부분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한 경우에 발생한다. 물론 정치인들은 상대방을 비판하고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감정 대립으로 치달을 여지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권력가들에게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공인다운 면모를 기대한다. 그들이 감정을 잘 통제하고 인격적인 소양을 쌓은 존재가 될 때 비로소 특권을 누릴 만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정치인들은 표리부동하기가 쉬우나 공'사석에 상관없이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대중의 지지와 인기에 의존하는 정치인들은 이미지 메이킹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후보자를 국민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혹 언행에 실수가 있었다면 바로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국민과의 신뢰의 문제이므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말수가 적은 것이 미덕이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때와 장소, 상대의 입장을 가리지 않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말보다 '나를 호소하는 말하기'를 하면 말 실수를 하기 쉬운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비방은 나의 인격을 실추시키지만 품위 있는 말은 나의 위상을 고취시킨다. 상대방이나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지나친 비방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비인간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거칠고 날카로운 어휘들은 인간관계를 경직되게 만들기 때문에 나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이고 순화된 언어와 같은 '상생의 언어'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이제 본격적인 선거철이다. 선거 TV토론회 등에서 후보자들이 치열한 공방을 펼치는 과정에서 말의 수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치인들의 막말 때문에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귀를 막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연륜이 깊어질수록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호작용하려는 사람의 태도는 아름답다. 올 6월에 치러질 제5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는 후보자들이 막말 공방을 치열하게 벌이는 모습보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자세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고위층 인사들의 언어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투영한다. 그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있고 보고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 주길 바란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양 있는 언어 사용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권력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할 것이다.
송석화 대구가톨릭대 취업교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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