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백정

장자(莊子)는 고도의 비유를 통해 도(道)를 이야기한다. 그 비유가 너무 커 황당하기조차 하다. 크기가 삼천 리나 되는 곤(鯤)이라는 물고기나 곤이 변해 구만 리를 날아다니는 새가 되는 붕(鵬)이 그렇다. 평범한 우리로서는 그 뜻을 감히 헤아릴 바가 못 되고, 그가 남긴 도의 실천은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양생'(養生) 편에서 백정(白丁)의 도를 말한다. 백정인 포정은 소를 잡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음률에 맞았다. 누가 이에 대해 물어보니 포정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였으나 3년이 지나자 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이 아니라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이치에 따라 소가죽과 살,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움직여 소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간다. 솜씨 좋은 소잡이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이고, 달마다 칼을 바꾸는 평범한 소잡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지만 나의 칼날에는 두께가 없다.'

이쯤이면 칼을 쓰는 데에 도라는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사자성어는 '도'를 알려주려고 한 장자의 의도와는 달리 요즘은 기술이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뜻한다.

사실 백정은 고려 때까지만 해도 일반 백성을 뜻했으나 조선 이후 천민의 한 부류가 됐다. 그릇이나 가죽신 등을 만드는 백정도 있었지만 대개는 도살업에 종사했으며 노비나 광대 등 다른 천민 가운데서도 가장 멸시받는 계층이었다. 생활이 곤궁한 일반 백성이 도살업에 종사하면서 조선 후기에는 백정이 약 4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요즘 백정이 의생(醫生)이 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가 인기다. 백정 출신인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서 의생 수업을 받고 의사가 된다는 줄거리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 중에 백정이 의사와 딱 어울린다는 대목이다. 소를 잡고, 가죽신을 만드는 일이 수술과 봉합의 과정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외과의사를 비하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한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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