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잘 알려진 대구 수성구 고모역(顧母驛). 2000년 들어 여객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역사가 만들어진 이후 80여년 만인 2006년 11월 1일 문을 닫은 이곳은 대구 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추억의 공간이다. 1925년 11월 1일 간이역으로 출발한 고모역은 1970년대 들어 연인원 5만4천명이 오갈 만큼 붐볐다.
이곳은 대구경북 서민들이 닭, 오리를 장에 팔거나 군부대 장병들이 교육과 훈련을 위해 자주 이동하던 곳으로 아들 얼굴 한 번 보려는 부모들이 역 주변에 진을 치곤 했다.
시인 박해수는 '고모역엔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고 노래했다.
그러나 폐쇄 4년째를 맞는 고모역의 '추억'은 온데간데없었다. 28일 역 입구엔 구급차가 생뚱맞게 서 있었고 역 양켠엔 천막아래에 소방차가 1대씩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사 승강장 내부도 사무실 집기로 가득했다.
그나마 녹이 슨 기찻길과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기차가 이곳이 간이역이었음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코레일대구본부 측은 "지난달부터 11월까지 만촌119센터에 이곳을 임대했다"며 "지난 4년간 마땅한 활용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이역의 추억과 애환이 버려지고 있다.
정부는 서정성과 역사성을 지닌 전국 간이역을 문화재로 등록하거나 관광자원화해 보존할 방침이지만 정작 간이역 소유권을 가진 코레일과 지자체는 폐허로 방치하거나 활용에 손을 놓고 있다.
지난 2006년 정부는 사라져가는 간이역들을 보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1930년대 건축 원형을 간직한 대구 동구 동촌역(2006년)과 반야월역(2008년)도 폐쇄 직후 근대문화유산 제270호와 303호로 각각 지정됐다.
그러나 27일 찾아간 두 곳은 문화재라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녹색 지붕을 이고 있는 동촌역의 뒤쪽 작은 유리창들은 군데군데 깨어져 있었고, 철로가 지나던 승강장 앞은 공원 조성을 위해 쌓아둔 흙무더기로 가득했다. 나무 판자로 창문과 출입구를 막아 보기 흉했고,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대구 동구의 반야월역도 공사 중인 대구선 제2공원 부지 흙바닥 한쪽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지난해 역 주변 아파트단지 진입도로를 내느라 논란 끝에 동쪽으로 500여m 이전한 이곳은 건축 자재와 함께 공사장 한쪽에 방치됐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옛 간이역들이 이처럼 방치되고 있지만 지자체와 코레일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동촌역, 반야월역 부지 소유권을 가진 대구시는 "건물 관리는 동구청에서 할 일"이라며 떠넘겼고, 동구청은 "관리는 두 번째 문제"라며 "사후 활용에 대한 시 계획이 없다"고 되받아쳤다.
코레일 또한 활용 계획이 없기는 마찬가지. 수성구 고모역 부지를 소유한 코레일 대구본부는 당초 고모역을 카페나 전통음식점 등으로 임대하려고 했지만 사업자를 찾지 못했고, 결국 만촌119센터에 역사를 임대했다.
코레일대구본부 경영전략팀 관계자는 "고모역 활용에 대한 문화·관광계 관심이 높아 하반기쯤 대구시와 다시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계명대 관광경영학과 정우철 교수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보존·개발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강원도 신남역이 김유정문학촌과 연계해 김유정역으로 이름을 바꿔 주목받는 것처럼 대구의 옛 간이역 또한 스토리텔링 관광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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