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정태의 중국책 읽기] 中 조선족이 겪는 정체성 딜레마

▨중국 조선족사회의 문화 우세와 발전 전략/김강일 지음(연변인민출판사,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연합체입니다. 이 때문에 일정 규모의 인구와 생활 근거지, 고유의 문자를 가진 소수민족 주거지역에서는 해당민족 언어로 된 출판물이 상당한 정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김강일 연변대 교수가 쓴 『중국 조선족사회의 문화 우세와 발전 전략』(연변인민출판사, 2001)도 그 중 하나입니다. 한국어로 쓰여 있고 조선족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어투나 문법을 보면 '동포라는 리유 하나로' '한국인의 립장에서 보면' 등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국어법체계와도 다르고, '사이버시대' '지식경제' 등의 용어를 보면 북한어법체계를 좇는 것도 아닙니다. 어법체계를 두고 정체성을 따진다면 조선족은 중국 조선족일 뿐입니다.

책의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중국 소수민족으로서 조선족이 겪는 정체성 딜레마와 생존 방법에 대해 중국 조선족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수교 이후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가 너무나 편협하고 일방적인 생각을 가졌고 그 때문에 많은 조선족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오해와 감정적 접근의 결과가 그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조선족사회와 한국 간 교류의 기본적인 조건이 혈연적인 관계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지는 교류에는 한계가 있다. 중국 조선족의 한국 방문 첫 시작은 동포애 넘치는 눈물의 상봉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눈물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동포라는 개념도 날로 희석되고 있으며 그 교류도 점점 찌그러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제안한 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한국인들은 중국 조선족을 한국인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 조선족 내부에서도 조국은 중국이고 모국은 한국이라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자가 있다고 꼬집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정판룡 교수가 제시한 입니다. "중국의 조선족 대다수는 '살기 위해' 중국으로 흘러 들어온 이민이어서 부모님 슬하를 떠나 중국으로 시집간 딸로 자신을 생각하는 것도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략) 중국에 시집 온 이상 우선은 중국 남편과 시부모를 잘 모셔야 하고 친정집과는 좀 거리를 두어야 하며 또 우선은 시집의 가법을 잘 지켜야 한다. 이것은 100여 년 이래의 이민 생활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생활교훈이다."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한 이러한 논란에 대해 필자의 결론은 단호합니다. '중국 조선족은 한민족의 핏줄을 타고난 중국의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이유 역시 분명합니다. 중국 국민으로서 평등한 지위를 확보하면 한국과의 거래에서도 주권국가 중국 국민으로서 동등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 역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냉철한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조선족과 한국인 모두 실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 한국의 분단 상황과 통일 문제를 들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에 익숙한 중국 조선족이 통일의 매개체로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인 조선족으로 남아있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중국 조선족의 발전 전망과 관련해서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실상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한, 러시아와 국경선을 접하는 변경지역에 위치하여 9곳의 대외개방통상구역이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통해서 활발한 대외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자치주의 수준과 비교하면 경제총량이 작고 발전 속도도 상대적으로 늦은데 그 이유는 국유기업과 집체기업의 비중이 너무 크고, 열악한 농업 기반과 노후화된 공업시설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조선족 대학생들의 대부분이 사범대학을 고집하고 있어서 사회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자치주의 인재 흡인력이 약해서 심각한 인재 유출현상이 초래되기 때문입니다.

중국 조선족을 대하는 마음, 한번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도 같고 마음도 나눈다 하지만 끼니조차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억지 '우리'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형틀이라는 점을 새길 때입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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