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별이 빛나는 밤 / 강현국

한 고요가 벌떡 일어나 한 고요의 따귀를 때리듯

이별은 그렇게 맨발로 오고, 이별은 그렇게

가장 아름다운 낱말들의 귀를 자르고

외눈박이 외로움이 외눈박이 외로움의 왼쪽 가슴에 방아쇠를

당길 듯 당길 듯

까마귀 나는 밀밭 너머 솟구치는 캄캄한 사이프러스, 거기

아무도 없소? 아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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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소? 아무도……"라고 캄캄한 허공에 대고 불러보는 시인의 육성 같은 마지막 행의 여운이 자못 찡하다. 시인은 "한 고요가 벌떡 일어나 한 고요의 따귀를 때리듯/ 이별은 그렇게 맨발로" 왔다고 썼다. 이별이란 그토록 사건처럼, 음모나 추문처럼, 조용하던 거울이 어느 날 한순간에 박살나듯, 평상심의 고요가 느닷없이 따귀를 맞듯, 그야말로 "맨발로 오"기에 과연 마음 깊이 당혹과 상처를 안겨주는 고통스런 일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마지막 유작 '까마귀 나는 밀밭'을 모티프로 하는 이 시는, 제 귀를 자르고,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화가의 '절대고독'을 빌려, 시적화자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비탄조로 토로하고 있다. 그 심정을 시인은 "외눈박이 외로움이 외눈박이 외로움의 왼쪽 가슴에 방아쇠를 당길 듯 당길 듯"이라는 언술로 타나토스에 아슬아슬 가 닿는다. 시인이시여, "캄캄한 사이프러스"처럼 묵묵히 견디시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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