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갋는다는 것

대구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에 계신 수녀님이 글을 보내오셨다. 메마르고 각박한 현실의 한 단면을 느끼셨다면서. 선한 사람도 많지만 한 사람의 악한 행동의 파장이 더 큰 것 같아서 마음이 크게 우울했다는 말씀까지 덧붙여서. 가끔 뵐 때마다 늘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분인데 꽤나 속상한 일이 있으셨나보다 싶어 궁금해졌다.

사연은 간단했다. 정류장을 출발한 시내버스가 1차로로 진입하려 했다. 뒤에 오던 승용차가 버스를 넣어주지 않으려고 급가속을 해서 앞질렀다. 주말 버스를 타고 가다 목격한 사건인데 사실 별것 아닌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생겼다. 승용차는 버스 때문에 진로를 방해받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곧바로 신호를 받고 있는 버스 앞에 바짝 후진해 가지 못하게 한 뒤 움직이지 않았다. 기사가 내려서 승용차 주인과 말씨름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버스 뒤로 밀린 차들이 경적을 울려 댔다.

이윽고 출발한 승용차는 좌회전을 받아 좁은 길로 들어가더니 또다시 멈춰 서서 길을 막았다. 얼마 지나 출발했으나 이번에는 오르막을 달려가 직진 도로에서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아 또 서는 것이었다. 따라가던 버스도 급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고도 속이 안 찼던지 승용차 주인은 기사에게 와 삿대질을 하며 "잘못했다고 해라"고 난리를 친 뒤에야 사라진 것이다.

수녀님은 이 일이 있은 20여 분을 '악몽 같은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한 사람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기사와 승객 모두 꼼짝없이 버스 안에서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승용차주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살면서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으면 저렇게 빌기를 강요하나? 끝까지 '갋아' 보겠다는 심성 아닌가. 남을 용서하는데 저렇게 인색할까!

수녀님이 과잉 반응한 것인지도 모른다. 속인들로서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구경하거나 운 나쁘면 직접 당하기도 하는 일 아닌가. 오히려 버스가 심하게 난폭운전을 했을 가능성도 많으니 승용차주 심경도 이해할 만한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에 진솔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용서해 주는 넉넉함이 정말 아쉽게 느껴진다는 말씀만은 와닿는다. 4월의 첫날이다. 완연해지는 봄기운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아름다운 일이 많아지길 소망해 본다.

이상훈 북부본부장 azzz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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