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안과 밖을 분리하지 않는 것, 그것은 결국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는 것이다. 타인의 세계에서 살아본 장기체류의 경험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몸을 가벼운 '여행의 신체'로 변화시킨다. 낯선 곳에서도 나는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일상 안에만 갇혀 있기에는 우리는 본질적으로 너무 자유로운 존재이다. 하지만 일상 밖에서 자유만을 꿈꾸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불안한 존재이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여행은 산소통을 채우러 떠나는 것과 같다. 짧은 순간 산소통 가득히 자유의 공기를 채우고 돌아오면 우리는 산소마스크를 쓴 것처럼 답답한 일상 속에서도 한동안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 밖의 세계는 언제나 여기, 일상을 위해 존재하는 세계이다. 여행은 나의 삶, 나의 일상과 분리된 것, 가끔 걸치는 파티드레스 같은 것이다. 일상의 안과 밖을 분리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야말로 전 세계를 나의 세계로 품고 살 수 있을까. 일상과 분리되지 않는 여행, 여행과 분리되지 않는 일상은 가능할까.
몇달 몇년씩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일상의 안과 밖,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 그 경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여행에서 일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는 아름다운 벙깍호수가 있다. 유람선도 오리배도 아무런 놀이시설도 없는 그저 휑한 호수 하나만 도시 안에 잠겨 있는 그곳에 며칠씩, 몇 달씩, 때론 몇 년째 꼼짝 않고 머물고 있는 여행자들이 있다. 그들이 벙깍호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저녁노을 때문이다. 호수 둘레에는 마치 정박한 배들처럼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있다. 이곳의 넓은 테라스에 의자를 내놓고 열대과일주스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앉아 있으면 어느덧 넓은 호수가 푸른빛을 거두고 서서히 오렌지빛의 노을을 빨아들인다. 그 순간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양 하늘과 호수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오직 오렌지빛만이 가득한 세상이 우리를 둥실 들어올린다. 2002년 겨울, 나는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 몇 달째 그 오렌지빛을 온몸에 채우고 있는 한국 남자 세 명을 만났다. 그 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여행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5일째예요."
남자는 큰 소리로 웃더니 "저는 3년째이고 이 친구는 2년째, 저 친구는 이제 1년 반쯤 됐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3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남자는 다시 껄껄 웃으며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것을 했지요"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것, 남자는 그것을 '여행'이라고 말했다.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카락, 열대의 바람에 알맞게 펄럭이는 가벼운 셔츠, 그리고 흔들림 없이 잠겨있는 눈빛, 남자의 행색은 '3년'이라는 놀라운 시간을 표현하고 있었다. "왜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왜라니요. 집에 돌아가는 순간 말짱 도루묵이 돼버리니까요."
바람과 노을만 먹고 행복할 수 있을까?
여행에서 얻은 나는 노을만 바라보고도 행복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면 '찌질해'진다. 노을 같은 건 인생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고 느껴지고, 일상의 시계가 던져준 산더미 같은 숙제를 받아들고 나면 나 자신은 노을보다 더 쓸모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왜 그토록 '찌질한 나'로 살아야 하는가, 나는 멋지게 살고 싶다. 노을과 맥주를 마시며 남자는 설명했다. "아가씨 5일 됐다고 했죠? 집에 가지 말고 우리한테 합류해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왈칵 두려워졌다. 열대의 바람과 노을만 먹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 집 냉장고 안의 김치와 된장찌개와 안락한 침대가 필요했다. 보름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는 것
그들은 지금도 지구 어딘가 낯선 길을 걷고 있을까. 2003년 여름, 나는 드디어 멀고 긴 여행을 떠났다. 4개월 동안 유럽대륙의 어지러운 골목들을 걷다가 터키의 어느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8개월간 '살아버렸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내 이름도, 직업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생판 낯선 사람들의 세계, 타인의 세계에서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살아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전혀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이다. 28년 동안 익숙하게 살았던 나의 세계 밖에는 내가 몰랐던 나, '전혀 다른 나'가 살고 있었다.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용감하고, 훨씬 솔직하며, 훨씬 다양한 것을 즐기고 감동할 줄 아는 나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멋졌다. 숙제가 없는 곳에서 나는 더욱 부지런히 꿈을 꾸었고, 틀에 갇힌 관계가 없는 곳에서 나는 더욱 자유롭게 낯선 사람들과 소통했다. 여행은 낯선 공간에 정을 내고 익숙함을 만드는 것이었다.
장기체류도 여행의 트렌드로
단지 떠나고 돌아오는 일에 지친 사람들은 좀더 다른 여행을 꿈꾼다. 그들은 단지 타인의 세계를 구경하고 바람을 채워 돌아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타인의 세계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여행은 이제 '장기체류자의 시대'를 연다. 기차 스케줄에 따라 바쁜 일정을 쫓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한 자리에 머물러보는 여행, 지구 반대편의 낯선 마을에 친구와 이웃과 느긋한 일상을 만들어보는 여행, 새로운 세계에 집을 짓고 나를 놓아보는 여행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범람하는 여행정보 중에도 '장기체류하기 좋은 나라, 좋은 마을, 좋은 숙소'가 등장했다. 놀랍게도 전 세계 어디나 단지 여행을 위하여 장기체류 중인 한국인들이 있다. 지금까지 전설이 된 장기체류 베스트 여행지는 방콕의 여행자거리인 카오산로드, 라오스의 루앙프라방, 인도의 다람살라, 네팔의 포카라, 에콰도르의 키토 등이다. 심지어 장기체류도 점차 트렌드가 되어간다. 그러나 여행은 결국 돌아오는 행위이다. 장기체류의 여행도 결국엔 반복되는 일상의 틀에 포획되는 것이 아닐까.
일상의 안과 밖을 분리하지 않는 것, 그것은 결국 일상을 여행처럼 즐기는 것이다. 타인의 세계에서 살아본 장기체류의 경험은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몸을 가벼운 '여행의 신체'로 변화시킨다. 낯선 곳에서도 나는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새로운 세계로 떠날 수 있는 가벼운 몸은 일상을 고정된 시공간이 아니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시공간으로 만든다. 여행은 일상과 함께 떠나고, 일상은 여행과 함께 돌아온다.
미노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