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의고(疑古)

1920년대 출간된 논문집 '고사변'(古史辨)으로 유명한 중국 역사학자 고힐강(1893~1980)은 '옛것 의심하기'(疑古)를 기치로 내건 의고학파의 중심인물이었다. 역사에 객관성과 과학적 근거라는 잣대를 들이댄 그는 중국 역사학계에 만연한 '옛 해석을 따른다'(承古訓)는 고질적인 관습을 거부했다. 이처럼 역사를 의심하고 문헌 실증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그의 시도는 20세기 중국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사마천의 '사기'에 기술된 요(堯)'순(舜)의 존재를 고사변 학자들은 믿지 않았다. 기원전 100년 무렵에 살았던 사마천도 그들이 실존 인물인지 확실히 몰라 갈팡질팡했는데 이를 후대 사람들이 사실로 믿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소리다. 이처럼 객관성이 결여된, 미심쩍은 역사를 고힐강을 위시한 의고학파는 아예 거짓말이라고 무시해 버렸다.

물론 이들의 역사 연구 방법이 맞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유물 발굴에 따른 문헌 입증은 '의고' 자체마저 의심의 대상이 되게 한다. 게다가 근래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역사를 정치적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면서 후학들로부터 '폐기될 운명'에 처한 대상이라면 이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하지만 역사를 이리저리 끌어다 붙이고 제 입맛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는 점에서 고사변 학자들이 역사 연구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잘못 해석된 역사가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지켜봐 왔다. 하물며 의도적인 역사 왜곡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임나일본부'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양국 학계가 논란을 벌이고 있는 수많은 쟁점들은 여전히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정부가 어저께 새로 검증을 마친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하고 '일왕=신의 자손'임을 강조하는 건국신화의 내용을 기술했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아이들이 어떤 역사의식을 갖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다.

'옛것 의심하기'는 이런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지만 역사를 함부로 재단하고 거짓을 역사에 이식하려는 움직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후대로 하여금 '옛것 의심하기'를 되풀이하도록 만들 것인가.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켜 역사를 궁색하게 만드는 행위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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