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자도 명품 사주면 좋아한다∼ '남자와 명품'

명품(名品),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자들 역시 은근히 바란다. 명품이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게 한다는 심리는 여자와 마찬가지다. 요즘은 능력 있는 여성 직장인이 멋진 연하남과 사귈 때 과감하게 지갑을 열 때도 많다고 한다. 남자 친구를 위해 또는 연하 남편의 패션을 위해 200만~300만원짜리 양복도 거침없이 카드로 결제한다.

제품 자체만으로 보는 사람도 즐겁고, 그 제품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하는 명품. 주머니만 넉넉하다면 남성 역시 누구나 갖고 싶어한다. 40, 50대 직장인들은 가정의 경제를 위해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20, 30대 젊은 남성들은 주머니에 돈이 없어 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패션이나 의류 관계자들이 볼 때 다소 후줄근해 보이는 남성이 몸에 걸치는 옷과 신발, 각종 액세서리 등을 모두 합하면 20만원 안팎이다. 보통 단정한 정도 수준의 직장인이 50만원 안팎이고 패션 감각이 뛰어난 남성의 경우 100만원 정도다. 여기에 명품이 더해지면 가격이 훌쩍 뛴다. 명품 1, 2개만 걸치면 300만~500만원이고 명품으로 몸을 휘감았다면 1천만원이 넘는다. 대구백화점의 협조로 직장 남성 박상현(29·DAKS 직원)씨를 통해 명품에 대해 접근해봤다.

◆알몸에 걸쳐 보니 1천64만9천원

'이태리 전통 정장 빨질레리(Pal Zileri) 195만원, 구두 65만원, 수제 다이아반지(결혼 예물) 500만원, 독일 귀금속 브랜드 아이그너(Aigner) 시계 100만7천원, 프랑스 패션 브랜드 듀퐁(Dupont) 셔츠 10만9천원, 하우스 버튼 32만9천원, 넥타이 10만8천원, 속옷 10만4천원, 양말 1만5천원, 독일 직수입 가죽브랜드 브라운 버펄(BRAUN BUFFEL) 가방 114만6천원, 벨트 23만1천원'.

초고가 명품은 아니다. 대체로 무난하게 선호되는 명품 중 하나씩을 골라 박씨의 몸에 하나하나 걸치고 입히니 어느새 1천64만9천원으로 치장한 딴사람이 탄생했다. 연예인이나 모델 못지않은 스타일이 나왔다.

박씨는 쑥스러운 듯 "패션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평소 명품에 관심이 많다"며 "오늘은 촬영을 위해 특별하게 모든 걸 명품으로 치장했지만 평상시에도 몸에 걸치는 게 1천만원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부유한 형편은 아니지만 아내가 돈을 모아 한번씩 사준 명품은 평생 간직할 수밖에 없어 평상시에도 소중하게 다룬다"고 했다. 그는 더 나아가 명품 오메가(OMEGA) 시계(1천만원 이상)도 정말 갖고 싶다고 밝혔다.

◆나도 명품 하나쯤은 갖고 싶다

시대가 변했다. 남성과 여성의 소득 역전, 영역 파괴, 역할 전환 등으로 인해 이제는 남성도 명품을 갖고 싶다는 심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에 사는 김철상(37·자영업)씨는 결혼 예물로 받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Cartier) 1천만원짜리 시계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고 있다.

김씨는 "평소 명품 옷을 입거나 명품 구두를 사지는 않지만 시계만큼은 꼭 명품을 차고 다닌다"며 "여름에 반소매 옷을 입고 있을 때 왼쪽 팔목이 더 빛나는 기분이고, 남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전상운(31)씨는 최근 미국에 사는 누나에게서 '코치'(Coach) 벨트를 선물 받은 뒤 이 벨트만 차고 다닌다. 착용감이 좋을뿐더러 상의를 벗을 때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 전씨는 "윗도리를 벗을 때 남들이 벨트 쪽을 한번 봐주길 바랄 때도 있다"며 "처음으로 생긴 명품인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 앞으로 여자친구와 명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할 작정"이라고 속내를 밝혔다.

지난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책을 써 유명세를 탄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내가 명품의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명품이 주는 행복을 모르는데 어떻게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겠느냐"며 "남성들이 명품의 가치를 알고 개인적 취향을 뚜렷하게 표현할 때"라고 지적했다.

◆명품 저변 넓어지고, 판매도 상승세

남성들의 명품 선호 추세는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몸에 걸치고 다닐 수 있는 각종 명품들의 저변이 넓어지고, 판매도 꾸준한 상승세다. 대구의 경우 롯데백화점은 명품 매장 고객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기자들의 취재도 제한하고 있다. 상품이 노출되거나 촬영되는 것조차 꺼릴 정도. 대백프라자 일부 초고가 명품 브랜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명품 코너가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을 정도로 상당하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전국 백화점 중 매출 신장세가 뚜렷한 것도 명품 매장의 역할이 크다. 이는 현대백화점이 보수적인 대구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데도 좋은 시장조사 자료로 활용됐다.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남성 명품 브랜드는 몽블랑(만년필), 구찌(가방·의류), 페라가모(잡화), 제냐(의류), 엠포리오 아르마니(의류·잡화), 버버리(의류), 코치(잡화), 보스(의류), 아테스토니(구두), 보테가베네타(가방), 태그호이어(시계), 빨질레리(정장), 듀퐁(의류·잡화) 등이다. 평균적인 가격대는 남성 정장 250만~500만원, 가방 100만~500만원, 시계 100만~2천만원, 구두 60만~300만원, 만년필 60만~250만원, 벨트 40만~100만원 정도다.

대백프라자 7층 DAKS 정용대 매니저는 "남성 명품족들은 정장뿐만 아니라 액세서리와 가방 등 소품에도 열광하고 있다"며 "우리 제품 애용 고객 가운데는 275만원짜리 최고가 정장을 고집하는 분들이 상당수이고, 100만원대 정장과 캐주얼도 꾸준한 판매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백 홍보팀 이준혁 주임은 "최근 30, 40대 남성들의 해외 명품 브랜드 구매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불과 4, 5년 전만 해도 명품의 주요 소비자가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었지만 요즘은 샐러리맨이나 신입사원, 면접을 준비하는 예비 직장인들도 명품 쇼핑에 나서 구매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백화점 명품 매장 관계자들은 남성 명품 열풍의 원인에 대해 최근 몸짱, 얼짱을 넘어 꽃미남, 품절남 등의 용어가 유행할 만큼 사회생활에서 남성의 외모가 여성의 외모만큼 중요하게 인식되는 분위기를 꼽았다. 남성들도 자신을 꾸미기 위해 과감하게 지갑을 열고 있는 것. 과시를 위한 사치품이 아니라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고, 자신의 취향을 대변해주는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럭셔리' L세대…불황에도 "하나 사도 제대로"

'명품 열풍'이다. 남녀 구분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가품을 구입하고 있다.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도 명품 매장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현대인의 명품 선호현상은 심리적 측면에서 타인보다 높은 경제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데다 자기관리 및 투자, 이미지 개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등 외부적인 부분이 더해지면서 선호 추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

명품족이라는 의미의 L세대(Luxury-Generation)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최근 N세대에 이어 주목받고 있는 L세대는 고가의 수입의류나 잡화, 액세서리 등을 소비하면서 정체성을 찾는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명품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20만~30만원씩 내는 '명품계'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할 수 있는 정보들을 명품 동호회를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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