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한 달은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응의 기간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에 연로하신 담임이 많다는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은 취학 전 유아 교육기관에 다닌다. 그곳은 젊은 이모, 고모 같은 교사들 위주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어울린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며칠 사이에 선생님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로 변해 있다.
당황스럽기는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대화보다는 순종을, 자녀를 맡기기보다는 교사로부터 가르침 혹은 지시를 받아야 할 형편이다. 이미 스승에 대한 존경과 경로사상이 뿌리 깊은데, 섬겨야 할 요소가 더 많은 연로하신 선생님과 맞닥뜨린 셈이다. 비켜갈 틈도 없어 보인다.
거기서부터 교사와 학부모는 교육의 동반자보다는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학부모 시련의 출발이자 공교육 비극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연로하신 선생님들이 저학년에 포진한 이유는 이러한 것 같다. 오전수업뿐인 1, 2학년을 연로한 교사들이 맡음으로써 수업 부담을 던다는 것이다. 교사들에게 있어 수업이 고작 힘든 노동일 뿐 가르치는 즐거움은 그토록 못 느낄까 하는 오해를 살 만하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 효과나 고려는 뒷전으로 느껴진다.
이쯤 되면 학생을 위해 교사가 존재한다는 엄연한 진리는 사라진다. 오죽했으면 상급 기관에서 연로하신 선생님들에게 고학년 담임 인센티브를 주는 웃지 못할 뒷북 행정까지 생겨났겠는가.
하지만 충성심 강한 저학년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서인지는 몰라도 상급 기관의 고육책은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교사의 연령대 분포는 고르게 하되 학년에 비례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한 나라의 미래는 교사들의 자세에서 가늠할 수 있다고들 한다. 교직이 편안한 자족의 기분을 만끽하며 유유히 정년을 향할 때 국가의 경쟁력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한다.
워털루 전쟁에서 승리한 대영제국의 웰링턴 장군은 '용감한 우리 병사들이 있기까지 헌신적으로 가르쳐준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승리의 영광을 바친다'는 개선 연설을 남겼다. 때마침 살신성인으로 민족의 자긍을 세운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았다. 국가의 녹을 먹지도, 조국의 내일을 걱정해야 할 지위에 있지도 않은 소시민들도 옷고름 여미며 안 의사의 친필휘호인 '국가안위 노심초사'를 가슴에 새긴다. 하물며 교직은 소시민보다 월등히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김일부(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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