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고독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야수(野獸)가 아니면 신(神)이다'라는 말을 했지만, 그들은 두 가지 면을 다 가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미움과 기피감을 가져서 야수적인 면을 가지고 있고, 고상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에서 자신을 약간은 격리시키려고 하는 심정과 희망을 가져서 신적인 면도 있다. 얼마 전에 정토(淨土)로 돌아가신 법정 스님과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러한 양면을 모두 가졌던 분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렇게 고독은 자신이 선택하면 마음을 수행하는 길도 될 수 있으나 강요당하면 그보다 더 괴로운 상태도 없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일어서거나 걷기 시작하면 손을 잡아 준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처음에 손을 잡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악수를 한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서로 간의 유대감을 표시한다. 돕거나 적어도 해를 끼치지는 않겠다는 약속이 된다. 고독감도 어느 정도 사라진다. 안도감도 생긴다.
회진할 때 꼭 손을 잡아 드려야 하는 할아버지 환자분이 계셨다. 3년 전쯤 뇌경색으로 입원했다가 어느 정도 회복하여 퇴원했지만 전신쇠약과 폐렴으로 다시 입원하셨다. 병실을 회진할 때면 언제나 손을 내게 내미셨다. 불편한 곳이 없느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손만 내미셨다. 손을 잡아 드려야 회진을 다녀간 듯 얼굴에 안도감을 띄우시고 눈을 감으셨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수상록'에서 의사 중에는 환자의 심리상태에는 주력하나 질병 자체의 치료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의사가 있는 반면, 엄격히 질병은 치료하나 환자의 심리상태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의사가 있다고 하면서, 중용을 취하는 의사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썼다.
내 의사 생활을 뒤돌아보면 환자의 심리상태는 무시하고 질병 자체의 치료에만 전심전력을 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후회감도 든다. 육체의 병은 고쳤지만 마음의 병을 새로 얻은 환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할아버지와 같은 환자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환자의 육체적 병을 고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베이컨이 이야기한 중용의 의사가 가장 훌륭한 의사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늙으면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고 한다. 할아버지 환자도 아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육체의 병보다는 고독이라는 병을 고쳐달라고 내게 손을 내미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회진할 때 그 손만 잡아주면 아무 말씀 없이 그렇게 편안히 눈을 감으셨을 것 같다.
임만빈(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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