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먹으로 그린 한국화에는 음양의 조화가 담겨 있죠"

소산 박대성 화백 '玄墨을 찾아' 대구 전시회

▲박대성 작
▲박대성 작 '월영'

"먹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먹은 동양정신의 태동이자 문학입니다."

50년 이상 먹 하나로 대가(大家)를 이룬 소산 박대성 화백의 전시가 대백프라자갤러리 전관(7~19일)과 수성아트피아 전관(7~25일)에서 동시에 열린다. 한국화의 진수를 보여주게 될 이번 전시는 10년 만에 대구에서 열리는 전시다. 500호가 넘는 대작들도 4, 5점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현묵(玄墨)을 찾아'. "먹은 무엇이냐. 북극의 얼음 한 조각 녹은 물과 부엌 그을음의 만남입니다. 음과 양의 만남이죠. 요즘 화단에서 먹을 외면하고 전통의 맥이 끊어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다. 호수 위에 강릉 어느 정자를 옮겨다 놓고 호숫가엔 버드나무 몇 그루를 심어두었다. 호수에 비친 달빛이 일렁이며 물비늘을 일으킨다. 스스로 '달의 노래'라고 칭할 만큼 달이 인상적이다. 산에는 부처가 훤한 불을 밝히고 있다. 금빛 부처에게서 나오는 빛은 어두운 시절 한줄기 희망처럼 오똑하다.

언뜻 실경처럼 보이지만 실은 작가의 마음속에 그려진 새로운 풍경이다. 때로는 독수리의 눈으로 땅의 풍경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물고기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려내기도 한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과감하게 수직으로 솟아있는 산은 힘이 넘치고 독수리의 눈으로 금강산의 풍경을 재구성한 작품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 산천 어디라도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요즘도 명절이면 배낭 하나 메고 산으로 들어갑니다." 끊임없는 여행과 관찰, 사색을 통한 작품에는 '우리 것'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깊이가 녹아 있다.

화폭에는 온갖 풍경과 사물이 펼쳐지지만 이 모든 것은 붓끝 먹에서 이루어진다.

500호 이상의 대작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촘촘한 붓질이 경탄을 자아낸다. "한국화는 서양화와 달리, 한번 실수하면 끝입니다. 이 크기 작품을 이렇게 완성하기까지 정신적 긴장을 잠시라도 놓을 수 없죠."

그림 한 폭에서도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 거친 붓질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치밀한 묘사가 있고, 활달한 붓질과 꼼꼼한 붓질이 한 화폭에 담겨있다. 추상적인 먹의 형상은 현대 미술로 한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음과 양의 본질과 내면세계를 얼마나 명료하게 그려내느냐 하는 것이 늘 나의 숙제"라고 말한다.

그는 24시간 작품을 생각한다. 쉬는 시간에는 서예를 하고 산책을 하면서 자연과 주변을 늘 관찰한다. 붓 쥐는 법을 바꾸려 마음먹으면 등산 스틱을 쥘 때도, 젓가락을 쥘 때도 그 방법을 고수한다. 서예에 심취한 때는 대화 도중에도 손가락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강한 실천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회상한다.

최고의 자리가 주는 중압감에도 단 한번 그림 그리는 것을 주저한 적 없다. "석가모니도 득도 이후 더 많은 공부를 하셨어요. 일생 살면서 배워야 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실천해야죠. 지금부터 더욱 그림에 정진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글씨 또한 최고 수준이다. 모든 서체를 통달했다. 도자기를 그려낸 작품도 눈에 띈다. 그는 "세계 유일의 보물 하나를 꼽으라면 인류의 애환이 다 녹아있는 도자기라고 할 것"이라 말할 정도로 그의 도자기 사랑이 유별나다. 그림 한쪽에는 옛시를 옮겨쓴다. 현대인들도 옛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는 시, 서, 화 모두 갖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쟁이'다.

그의 경주 사랑은 남다르다. 이곳에는 신라 천년 도읍을 이어오던 기운이 흐르고, 신라의 혼령들이 뿜는 기운이 응축돼 있다. 이 때문에 스스로를 '신라인'이라 부른다. 그는 10여년간 경주 삼릉 작업실에서 신라인의 기운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주 사랑에 대한 응답일까. 조만간 그의 이름을 딴 '소산 미술관'이 경주에 문을 열게 된다. 미술관에는 1천여점 이상의 작품이 소장될 예정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될 전망이다. 이미 그의 먹빛에 반해 그의 작품을 소장한 세계적인 미술관이 여럿 된다.

"모든 의식의 근본을 우리 전통으로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먹의 깊이감과 가능성을 나눴으면 합니다." 053)666-3266.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