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휴대전화

모 방송의 개그 프로그램에 복학생이 나오는 코너가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 복학생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군대에 가기 전에 사용했던 무선 호출기, 속칭 삐삐를 애지중지했다. 그는 누가 전화하면 삐삐에 번호가 찍혀 연락할 수 있다며 늘 자랑하고 다녔다.

어느 날, 후배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것을 보았다. 이 복학생 왈, "너는 삐삐에다가 무슨 말을 지껄이면서 오냐?"라고 물었다. 후배가 "선배, 이거 전화기인데요"라고 답하자, 휴대전화를 몰랐던 이 복학생은 "너 거짓말 조금만 더 심하게 하면 삐삐로 사진 찍고, 게임 하고, 영화도 본다고 하겠다"며 구박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싱겁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변화에 둔감한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찔끔하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매일같이 새 기술이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도 휴대전화만큼 급속하게 발전한 것도 드물다. 상용 휴대전화는 1983년 모토로라사가 처음 개발했다. 국내에는 84년에 도입됐지만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는 부(富)의 상징이었다. 단말기 가격이 백만 원대를 훌쩍 넘어 휴대전화 안테나가 달려 있는 차는 대부분 최고급 승용차였다.

이제 휴대전화는 컴퓨터와 함께 유치원생부터 80대 노인까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생활용품이 됐다. 그러다 보니 종류도 많고, 기능도 많아 무엇을 사야 할지 선택도 어렵다. 그저 통화나 하고, 문자 메시지 정도만 보낼 수 있으면 충분한데 휴대전화의 진화는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른다. 버튼식이 터치 스크린으로 바뀌고, 휴대용 컴퓨터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도 대중화됐다.

최근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는 테라피폰이 출시됐다는 뉴스가 보인다. 스트레스 해소나 답답함 해소 등 9가지의 기능 중 현재 사용자의 마음 상태와 비슷한 기능을 선택하면 LED나 LCD 화면의 색깔이 변하면서 평상심을 찾게 해준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전화, MP3, 인터넷, 컴퓨터, 카메라 기능을 가진 것도 모자라 심리 치료 영역까지 도전장을 낸 셈이다.

모든 것을 다 잡아먹는 불가사리 같은 괴물로 성장한 이 휴대전화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빠른 속도가 어지럽기만 해 적응하기가 어렵다. 그냥 '전화기는 전화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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