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700자 읽기] 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촉망받던 화가 인주의 죽음을 둘러싸고 주변 인물들이 그 죽음의 이유를 각자 찾아나가는 이 책은 마치 한편의 미스터리극을 연상시킨다. 중학생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주인공 정희는 탐정이 되어 과거로부터 인주의 모습과 인주 주변인들을 찾아다니며 죽음의 이유를 찾아나간다.

하지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삶은 주변 사람들의 시각으로 조각을 맞춰나가자 전혀 낯선 이의 삶으로 다시 읽힌다.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은 심오한 뜻을 내포한다.

두 여자가 나눈 사랑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과 주변인의 입을 거치며 재구성된다. 이야기는 죽음의 배경을 향해 빠르게 전개된다.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연이어 나타나면서 반전을 선사한다. 이와 함께 흘러가는 현실의 순간순간을 묵직한 시선으로 지켜보며 이미지화한 작가의 표현은 소설 읽는 맛을 선사한다.

'이런 이야기를 넌 이해하지 못하지/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약해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 상처가 덕지덕지 쌓여 삶이 된 사람들, 그 상처 사이로 사랑을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390쪽. 1만원.

최세정기자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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