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왔는가'를 묻고 있는 이 책은 미국 자본주의와 근현대 정치 발달사라고 할 만한다. 말하자면 미국의 자본과 정치, 자본가와 정치가가 근현대 미국의 중요한 역사적 장면에서 어떤 협력관계를 가져왔는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지은이 히로세는 미국의 자본과 정치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은행업으로 출발한 JP 모건과 석유업으로 출발한 록펠러가 독점자본이 되어가는 과정과 이 두 자본이 식량, 정치, 군사, 언론, 사업, 수송, 자원, 과학, 기술, 오락 등 전 분야에 독점적 권력을 휘두르게 된 배경을 하나씩 짚어간다. JP모건과 록펠러로 대표되는 미국의 독점재벌이 어떤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태를 저질렀는가, 또 그들이 세계경제를 어떻게 좌지우지했으며, 미국은 물론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을 어떻게 조종해왔는가를 파헤치는 것이다.
지은이는 20세기에 16대에 걸친 미국 대통령 내각에는 모두 366개의 자리가 있는데, 이 중에 290개의 자리, 즉 79%라는 절대적 비율이 모건-록펠러 연합의 수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충분한 자료만 수집되면 이 자료를 100%까지 실증할 수 있다고 호언한다.
(지은이의 이 같은 조사와 주장은 대단히 충격적으로 와닿지만 한편으로는 진부하다. 역사적으로 정치가와 자본가는 각자 완전하게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관계다. 정치가의 정치적 판단이나 행위가 자본가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고, 자본가의 투자활동이 정치가의 정치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가와 자본가 모두 '대중' 혹은 '대량 소비자'와 동시에 관계를 맺고 있다는 데서 기인한다.)
지은이 히로세는 정치가와 자본가가 맺어진 관계를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이 맺고 있는 느슨한 관계조차 '밀접한 무엇'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보인다. 예컨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모건에 속한 GE의 PR맨으로 출발해, 이 회사의 원자력 산하에 있는 US 비소에 고용된 후, 록펠러에 속한 스탠더드 오일과 이권을 거래한 석유왕 헨리 살바토리 및 유니언 석유의 후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까지 역임한 사람이 젊은 시절 어떤 회사의 PR맨을 역임하고, 관계사의 산하에 속한 어떤 회사와 또 그 회사와 이권을 거래한 어떤 회사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이 그렇게 밀접한 자본과 권력의 유착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평범한 사람도 6, 7명의 사람만 거치면 미국 대통령과도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당대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JP 모건-록펠러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인맥 연결은 이 책의 가치를 퇴색시킨다. 한 예로 독일 나치스와 모건의 관계를 설명하는(86쪽) 부분은 어처구니가 없다. 나치스당의 창설자 안톤 드렉슬러와 모건이 아직 홀로서기 하기 전에 손을 잡았던 파트너 앤서니 드렉셀은 동성동명, 즉 한 뿌리였다. 따라서 모건과 나치스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이다. 성이 같고 몇 가지 연관이 있다고 해서 악당 나치스의 출현을 인과관계로 엮어가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
어쨌거나 미국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특징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이 책은 '미국 근현대사로 본 전 세계 자본과 정치의 관계사'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자본과 정치의 관계를 '도식적'으로 그려보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과 정치권력의 연합 혹은 협조 혹은 담합을 '이야기 형식'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20세기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중대한 사건들을 추려낸 후, 각 사건에서 도발적으로 행동했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이름들과 연관성을 밝히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역사적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 나치스와 유대인 학살, 빨갱이 사냥, 사코와 반제티 처형, 제2차 세계대전, 영화계의 포르노 해금, 노벨상, 올림픽, 케네디 암살사건, 워터게이트, 석유파동,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레바논 전쟁, 아카데미상, 첼린저 호 폭발사고 등이며, 관계있는 인물은 물론 모건과 록펠러를 비롯해 그들의 지시를 받은 정치가들을 지칭한다.
이 책이 결과를 갖고 역으로 관계를 밝히고 있다는 점은 약점이기도 하다. 어떤 결과가 발생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인과관계가 있었을 텐데, 지은이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필요한 자료만 제시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중대한 정치적 경제적 현안은 언제나 거대한 자본가와 연결돼 있게 마련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역사에서나 그랬다는 점에서 '자본이 곧 제1권력'이라는 말이 위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역사 이래 자본은 언제나 권력으로 작동해왔다는 점에서 이 책의 주장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지은이는 나치스당의 결성과 아돌프 히틀러라는 악마 같은 인간의 탄생 등을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자본의 정교한 작전은 아닐까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나치스 탄생에 대해 역사적 해석을 새로운 각도에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주장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식이라면(모든 것을 음모로 본다면) 현재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 역시 '북한 사람들에게 쌀 맛을 보여주어 나중에는 그 쌀만 사먹게 하려는 자본가들의 음모'라고 볼 수 있다. 하긴 50년대, 60년대 미국이 한국에 음식을 지원해줬던 것을 그들의 음식 맛에 길들이기 위한 음모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 말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지은이 히로세 다카시는 논객이나 지식인이라기보다는 실천하는 행동주의자에 가까운 저널리스트로 반핵평화운동에 투신한 일본의 대표적인 활동가다. 그는 무욕의 사상을 실천하며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존경하며, 반핵운동가답게 핵발전을 통해 공급되는 도쿄 전력의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집을 직접 개조했을 정도로 지독한 괴짜이기도 하다. 560쪽, 2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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