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금융권, 서민 신용평가 능력 제고를

최근 근로자생계신용보증, 미소금융 등 각종 서민금융 활성화 대책이 시행되고 있으나 2009년 말 기준으로 저(低) 신용자(7~10등급)가 776만명에 이르는 등 '금융소외' 현상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결국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책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금융기관의 서민금융이 살아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금융권의 서민금융 활성화가 미진한 것일까? 필자는 경제학 교과서에도 흔히 인용되는 '중고차 시장은 레몬 시장'이라는 이론을 이용해 풀어보고자 한다. 레몬 시장이란 맛 없는 과일인 레몬밖에 널려 있지 않다는 뜻이며 미국 중고차 시장을 빗댄 표현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자는 판매자 보다 차량의 성능과 품질에 대한 정보가 적은 '정보의 비대칭' 상황에 놓인다. 이 경우 구매자는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고, 판매자는 성능이 좋은 차를 구매자가 제시하는 낮은 가격에 팔지 않는다. 결국 중고차 시장은 성능과 품질이 좋지 않은 레몬만 거래되는 역선택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같은 논리를 서민금융시장에 적용해 보자. 서민금융 구매자인 금융회사는 판매자인 서민금융 대출신청자의 신용상태에 대해 정보가 적은 비대칭 상황에 놓인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은 비싼 금리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반면 대출신청자의 신용위험은 천자만별이라서 낮은 금리가 타당한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파산상태의 고객도 있어 합리적인 금리보다 높은 금리도 기꺼이 수용하는 '역선택'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즉 낮은 금리를 받고 싶은 우량 서민금융 대출신청자는 높은 금리로 인한 민원을 제기하게 되고, 높은 금리를 수용한 예비 파산자들로 인해 금융회사는 부실에 빠지게 된다. 시장이 실패한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해법은 낮은 금리가 필요한 실질적인 서민금융 대출 신청자와 사실상의 예비 파산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금융회사들의 '신용평가 능력 제고'일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적정한 금리로 서민금융이 이뤄지고, 예비 파산자의 경우 확실한 정책자금이 선택적으로 집중 지원된다면 서민금융 시장의 신뢰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금융회사들의 신용평가 능력을 제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긍정적 정보의 공유 확대와 함께 개인신용평가사(CB)의 기능 제고가 병행되어야 한다. 즉 평가의 재료가 되는 정보가 충분히 공급되고,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금융회사와 신용평가회사의 역량이 결합된다면 보이지 않는 시장의 힘이 긍정적으로 발휘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긍정적 정보의 공유 확대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서민금융 대상자는 연체기록 등 부정적 정보가 많은 반면 소득 및 긍정적 정보의 반영이 미흡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긍정적 정보를 활용하게 된다면 서민금융의 대상고객층인 저소득자의 대출승인율이 전반적으로 크게 개선되는 등 신용위험(연체 등) 증가 없이 서민금융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경우 필요한 정보로서 은행의 각종 여신거래실적 및 카드사의 현금서비스를 포함한 카드거래실적 등 긍정적 거래실적정보와 서민들의 주요 소득원인 중소기업에 대한 평가정보,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공적기관의 소득(등급)정보 등이 신용평가에 반영돼야 한다.

둘째, 개인신용평가 역량(시스템, 인력 등)이 부족한 중소형 서민금융회사들이 긍정적 정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신용정보 유통체계 개편이 필요함에 따라 개인신용평가회사(CB)의 기능 제고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예로 개인신용평가회사들이 단순 정보 제공 수준에서 나아가 금융회사의 신용평가시스템의 협력자로서 전문 인력이나 표준 신용평가 방법론 등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필자는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이라는 두 번의 위기로 인해 급속하게 사회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필연적 결과로 서민금융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은 서민금융시장이 불법추심 이미지와 고리대금 문제로 시장의 실패를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 정보의 공유가 확대되고 금융회사와 개인신용평가사의 기능이 제고 되는 등 '신용평가 능력이 제고' 된다면 제도권 금융시장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 물론 말만으로 이룰 수 없다. 정책당국과 금융회사들, 그리고 각종 시장참여자들이 뜻을 모은다면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김광수 나이스그룹 회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