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을 살려내라는 것도,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제대로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군대에서 세상을 뜬 아들이 어떻게 숨졌는지 진실만은 밝히고 싶어요."
구경숙(53·여·대구시 서구)씨는 지난 2002년 3월 3일 새벽을 잊지 못한다. 전날 오후 11시 30분쯤 강원도 모 부대에서 철책 근무를 하던 큰아들 반모(당시 20세) 일병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한 탓이다.
이후 8년, 아들의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위한 구씨의 외로운 투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구씨에 따르면 처음에는 감전사라고 했던 군은 소총으로 자살한 뒤 유탄이 튀면서 초소에 불이 나 시신이 타버렸다고 말을 바꿨다.
구씨는 "아들의 위에서 저녁 식사가 제대로 소화되지도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사망 시점이 초저녁"이라며 "투광등을 켜려다 감전사하자 군이 장비 관리 소홀을 감추기 위해 이미 죽은 아들에게 총을 쏘고 불을 지른 뒤 사망 시점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들의 시신은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한 국군병원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며 "아들을 차가운 곳에 남겨두고 어머니인 내가 여태 숨 쉬고 있는 게 죄스럽다"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구씨처럼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이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가족들의 기약 없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가 지난 2006년 1월부터 접수한 미제 사건 600건 가운데 사망 원인이 규명된 것은 246건(41%)에 불과하다. 이 중 사인이 타살로 확인된 것이 17건, 공무상 질병 22건, 사고사 40건, 군복무 환경 악화 167건이었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미제 사건이 많지만 군의문사위는 지난해 말 4년간 한시적인 활동을 마감해 가족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김미숙(55·여·대구시 북구)씨도 2002년 7월 3일 강원도 모 부대 해안 초소에서 사망한 아들 박모(당시 20세) 일병의 사망 원인에 대해 군의문사위가 '조사 불능' 판단을 내리자 절망했다.
군은 박 일병이 선임병을 소총으로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김씨는 군 발표에 동의할 수 없었다. 김씨는 "군은 '아들이 빈 탄창을 뺀 뒤 새 탄창을 끼우고 공포탄 네 발을 쏜 뒤 다시 선임병에게 총을 겨눴다'고 발표했다"며 "전문가들은 '선임병이 계속 지켜보고 있다 총에 맞았다는 게 이상하다'는 의문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에 대한 구타와 가혹 행위를 저질러 군 영창 복무 대기 상태였던 선임병을 왜 굳이 함께 근무시켰는지 모르겠다"며 "군은 현장 증거도 전혀 남겨두지 않고 동료 장병들과의 면담도 막았다"고 하소연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오창래 위원에 따르면 현재 미제로 남은 군 의문사 사건 가운데 국군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보관 중인 시신은 모두 18구로, 대구경북권 시신은 6구다.
오 위원은 "군의문사는 가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민·관·군이 합동으로 재조사를 해야 한다"며 "군의문사가 폐쇄적인 군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이기 때문에 진상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이 큰 만큼 별도의 상설 조사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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