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 가야 지역에 식민 국가를 건설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제2차 한일역사공동위원회에서 공식 폐기됐다. 애초부터 실체가 없었던데다 일본 학계조차 인정하지 않던 황당무계한 설이니 폐기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 합의는 강제성이 없다고 한다. 일본이 엉터리 사실(史實)을 계속 주장하고 자국 학생들에게 왜곡 역사를 가르쳐도 달리 손쓸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며 계속 당하기만 하느냐는 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를 중국 변방사에 편입시키는 것도 모자라 고구려까지 중국사에 포함시키는 '공작'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도 발해는 우리 고대사 체계에서 소외된 가야보다는 한결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 곡절은 있었지만 우리 역사 교과서는 통일 신라와 함께 발해를 우리 고대사로 편입시켜 '남북국 시대'로 수록하고 있다.
반면 가야는 잊혀진 나라가 됐다. 구야, 가락, 가라라고도 부르는 가야는 어떤 나라였나? 김태식 교수(홍익대)는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에서 가야는 북부 12개국, 남부 15개국 등 총 27개국이 있었다고 밝혔다. 가야의 최대 판도도 낙동강 유역을 넘어 전라남'북도 동부 지역까지 포함한 시기도 있었다. 신라 백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힘이 약한 남부 지역 소국들부터 차례로 신라와 백제에 복속되었고, 562년 대가야가 마지막으로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가야는 신라 백제와의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고대역사 초기에 소멸해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고령 지산리 고분군 등에서 출토된 철기 유물은 신라나 백제의 유물 못지않다. 가야라는 지명도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 있다. 가야산을 비롯해 부산의 가야동, 대가야(고령), 금관가야(김해)와 함께 3대 세력을 형성했던 아라가야의 도읍지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는 가야의 역사를 전하는 흔적이다.
가야는 왜 잊혀졌을까. 신라 백제와 달리 불교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 멸망해 불교 유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임나일본부설 등 일본의 '역사 침탈'에 위축돼 우리 스스로 가야사의 의미를 축소한 때문은 아닐까. 따라서 이제라도 가야사를 부각해 가야를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먼저 우리가 기억하는 가야인들부터 스토리텔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야금의 명인인 우륵은 소설가 김훈이 '현의 노래'를 통해 이미 알렸으니 신라에 무력으로 점령당한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왕(월광태자와 동일인이라는 설도 있음)부터 살펴봄 직하다. 월광태자는 대가야 멸망 전 신라에 투항한 우륵 못지않게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이다. 그는 합천에 있는 월광사를 세웠다고 하며, 그 후손인 순응대사는 해인사를 창건했다.
대가야 축제가 8일부터 11일까지 고령 일대에서 열린다. 천안함 사고로 오락성 이벤트는 취소하고 가족 단위 체험 행사만으로 축제를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많다. 가야를 우리 역사의 주역으로 부각하는 행사는 없고 그저 보고 즐기는 축제여서 그렇다. 대가야 멸망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정립(鼎立)한 시대는 98년에 불과하다며 '삼국시대'가 아니라 '사국시대'를 주장하는 학자도 있는 만큼 다른 가야 지역 지자체와 연계해 가야사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 등을 개최하면 좋겠다.
실패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패자(敗者)의 흔적도 역사다. 가야는 엄연히 우리 고대국가였고 영남인 대부분이 가야인의 후예다. 아무리 패자여서 가야의 기록이 없다고 해도 가야사를 방기해선 곤란하다. 수세적 역사 접근을 계속하면 습관이 될 수 있다. 나쁜 습관은 병을 부르기 마련이다. 지병이 되고 난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을 계속 방치하다간 독도가 일본 땅이 되고 광개토대왕, 김유신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될 수도 있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가야도 우리 역사다.
曺永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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