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관상용 식물이다. 사람들은 철마다 산천을 다른 색깔로 물들이는 꽃들을 보며 시간의 변화를 실감하고, 가정에서는 화분과 화병에 꽃을 두고 계절의 흥취를 누렸다. 세계 어느 나라든 꽃을 시각적 만족에 활용했지만 우리 민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각으로 즐기는 데도 썼다. 대표적인 것이 화전(花煎), 꽃지짐이다.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국화가 주로 화전의 재료가 됐는데 음력 3월 진달래 화전이 압권이었다. 여성들의 바깥출입이 쉽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도 음력 3월에 진달래가 활짝 핀 산야에 나가 경치를 즐기며 화전을 먹는 풍습만은 계속됐다. 여성들은 꽃지짐과 함께 준비해 간 음식을 펼쳐 놓고 누가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들었는지 비교하고 나눠 먹으며 가무를 즐겼다.
화전놀이는 엄격한 위계와 시집살이에 억눌려 지내던 여성들이 잠시라도 해방되는 공간이자 여성들이 안방살이에서 근근이 가꿔온 낭만을 지탱시켜 주는 시간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내외를 가리는 예법이 강화돼 양반가 여성들은 평생 서너 번밖에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지만 안동 류성룡 종가에서는 화전놀이 습속이 계속돼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진달래 화전은 찹쌀가루에 진달래꽃을 많이 섞어 반죽한 다음 동그랗게 빚어 참기름에 지져서 꿀을 발라 먹는다. 진달래는 화전뿐만 아니라 녹두가루와 반죽해 국수로도 먹었고, 꽃과 뿌리를 섞어 두견주로 빚기도 했다.
조선 세종 때 학자 강희안은 벼슬을 9품으로 나누듯 꽃도 9품으로 나눠 품격을 가르며 진달래에는 5품을 줬다. 메마른 땅에서 자라며 오로지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서만 피는 것이 절개 있는 신하를 닮았다는 뜻에서였다. 이에 더해 가자(加資)까지 내려졌다. 가자란 임기가 차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관원들의 품계를 올려주는 일을 말하는데, 진달래에 내린 가자는 바로 식용의 미덕을 칭찬한 것이다. 절개 있게 피었다가 춘궁기 굶주린 백성들에게 음식으로, 아픈 이들에게 약주로 몸을 바치니 품계를 올려줌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주면 음력 3월이다. 꽃샘추위 탓에 올봄 꽃구경이 늦어졌지만 이젠 산과 들로 나아가 꽃 감상하며 시 한 수 읊조리기 딱 좋은 때다. 진달래 흐드러진 곳을 만나면 꽃지짐 먹던 선조들의 풍류도 되새겨볼 일이다.
김재경 특집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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