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리며 개나리, 진달래, 목련 등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가까운 야산을 오르다가 양지 바른 산소 주위에서 쉬다 보면 한동안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꽃이 보인다. 바로 할미꽃이다. 할미꽃은 다른 봄꽃들보다 화려하지 않은 서민적인 꽃으로, 봄날 꽃샘추위 속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할미꽃은 말 그대로 구부정한 허리에 흰머리처럼 헝크러진 털로 나뭇가지 위가 아니라 발 아래에서 피어난다. 할미꽃이 주로 자라는 곳은 산소 주변이나 양지바른 곳인데, 이는 햇볕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이다. 예전에는 흔했으나 요즘은 나무들이 많이 우거져 주변에서 찾아보기 매우 힘든 야생화다.
'그리운 손녀의 집을 눈앞에 두고 쓰러져 돌아가신 할머니를 손녀가 양지 바른 곳에 묻자, 이듬해 봄 그 무덤에서 늙고 병들어 힘없이 살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는 할미꽃의 전설이나 '슬픈 추억'이라는 할미꽃의 꽃말은 왠지 우리 가슴을 촉촉하게 만든다.
할미꽃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북동부 등지에 자생한다. 할미꽃이 피고 난 뒤 열매에 덮인 흰색 털이 할머니의 흰 머리카락을 닮았다고 해서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한다. 야장인(野丈人), 백두초(白頭草), 호왕사자(胡王使者) 등으로도 불린다.
한의학에서 백두옹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풀인 할미꽃의 뿌리로 성질이 차고 맛은 쓰며, 봄과 가을에 채취하여 건조해 사용한다. 성미가 고한(苦寒)하여 열을 내리고 해독시키는 소염'살균'살충 및 지사 작용이 있다. 그래서 발열'점액성 혈변'설사 등이 동반된 이질에 효능이 있으며 특히 세균성이질과 아메바성 이질에 효과가 있다. 그리고 발열이 동반된 장염과 식중독으로 인한 복통'설사, 여성의 음부가 가려우면서 대하(帶下)가 있는 질염의 경우에도 응용할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백두옹은 맛이 쓰고, 성질이 차며 독이 있다. 적독리(赤毒痢)와 혈리(血痢)를 다스리고 연주창(連珠瘡, 경부임파선염)과 사마귀를 없애는 효능이 있다'고 기재돼 있다.
약리학적으로 백두옹은 프로토아네모닌(protoanemonin)이라는 점막자극물질이 여러 가지 세균과 아메바원충, 질트리코모나스에 대한 살균 및 살충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혈압을 내리고 말초혈관을 확장하고 심장의 수축작용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할머니처럼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약성은 차면서 독이 있어 주의가 필요한 약재다. 시골 사람들이 백두옹을 캐서 돌로 찧은 후 물에 풀어 물고기를 잡거나, 재래식 화장실에 넣어 구더기가 생기지 못하도록 한 것도 독성을 활용한 지혜다. 특히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한 약초들은 성질이 아주 강하다. 백두옹은 민간요법으로 구안와사나 관절염에 생것을 찧어 환부에 붙이기도 하는데, 아주 위험하며 또한 피부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물집이 크게 생겨 부작용이 심각하다. 또한 허한성(虛寒性)의 설사와 이질에는 복용을 금해야 하며, 절대로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으면 안 된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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