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찬경루 현판 국학진흥원 기탁

청송 찬경루(讚慶樓)의 현판 2점과 편액 11점 등 13점의 유물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됐다.

찬경루는 청송 심씨 시조 문림랑 위위시승 청기군 심홍부(沈洪孚)의 제각으로 1428년(세종 10년) 당시 군수 조봉대부 하담(朝奉大夫 河澹)이 한가로이 쉬는 선비들을 모아 창건, 청송읍 소재 용전천 강가 자연으로 생긴 취석암반 위에 세운 16칸 2층 누각(樓閣)이다. 그 뒤 100여년 동안 소헌(昭憲, 세종의 비), 인순(仁順, 명종의 비), 단의(端懿, 경종의 비) 등 세 사람의 왕비를 배출한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찬경루는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가 낳은 왕자 8형제가 외가인 청송 심씨 시조를 위해 지은 것으로 현판과 누대의 역사를 기록한 약사와 편액, 시판, 기문 등이 전해지고 있다. 찬경은 '우러러 찬미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시조로부터 집안의 선덕을 쌓은 결과가 조선에 이르러 세 사람의 왕후를 배출했고 소헌왕후가 8대군을 낳아 조선왕실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창건 후 1688년 숙종 14년에 중수해 문정공 송시열이 기록했다. 그 뒤 다시 화재로 200여 민가와 같이 소실됐던 것을 1792년에 다시 중수했다. 상량문은 지부사 한광근이 지었다. 1927년에 또 다시 중수하고 상량문은 장사랑 이중철이 지었다. 1968년에서 1971년에 걸쳐 새로 중수하니 상량문은 22세손 심상을이 지었으며 기문(記文)은 조규철이 지었다.

누상에는 본래 안평대군이 쓴 '송백강릉'(松栢岡陵)이란 큰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전해지지 않고, 한철유가 쓴 현판이 전해지고 있다.

청송 심씨 대종회는 현판과 편액을 보전하기 위해 국학원에 기탁을 결정했고, 청송군은 현판의 모각을 제작해 원본 위치에 새로 내걸었다.

청송'김경돈기자 kd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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