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통에서 배우는 음식건강] (3)한 상 차리기와 편식

양식은 우리와 상 차림이 다르다. 맨 처음 수프가 나오고 그 다음 야채가 나온 뒤 스테이크가 나오는 등 식사가 일정한 순서에 따라 차례로 진행된다. 기자가 미국의 한 대학에 취재를 갔을 때 구내식당에서 학생들이 식판에 빵과 야채, 고기와 수프, 디저트 등을 한꺼번에 담아놓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밥상처럼 차려놨기에 어떻게 먹는가 지켜봤더니 역시 수프와 야채를 먼저 먹은 다음 빵과 고기를 먹고 디저트를 먹는 순서를 따르지 않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빵과 야채, 고기를 골고루 먹으며 수프를 국물처럼 떠먹는 우리 일행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학생들이 적잖았다.

중국의 식사도 하나씩 차례로 먹는다. 일본은 처음에 밥과 국물, 야채가 우리처럼 한 상에 차려져 나오지만 그 뒤로 일선, 이선, 삼선 등 독립된 요리가 차례로 나온다는 점에서 역시 순서가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인의 밥상은 모든 음식을 한 상에 다 차려서 낸다. 밥과 국, 찌개와 나물, 고기까지 한 상에 모두 올라온다. 그 이유는 밥상에 오르는 음식들이 각각 독립된 음식이 아니라 다른 음식과 어울려야 제맛을 내기 때문이다. 김치를 좋아한다고 김치 먼저 먹은 뒤 밥을 먹거나, 밥과 야채를 다 먹은 뒤 국을 먹는 형태의 식사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이는 한국 음식에 주식과 부식의 개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주식인 밥과 부식인 반찬을 함께 먹는 식사 특성상 한 상에 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음식문화가 가져온 영향이다. 서양에서는 빵이 주식인 듯하지만 우리의 밥과는 다르다. 오히려 고기를 주식으로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주식이란 많이 먹는 음식일 뿐 부식과 함께 먹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상에 모든 음식을 다 차리는 식사문화는 필연적으로 편식 문제를 일으켰다. 좋아하는 한두 가지 음식이 아니라 상에 차려진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믿음이 오래도록 지배해온 것이다. 특정한 음식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먹기를 강권하거나 심지어 억지로 떠먹이는 일까지 허다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편식이 반드시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상 가득한 음식 중에 좋고 싫은 것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영양의 균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라면 일정 정도의 편식은 애써 고치려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자녀의 편식 걱정을 노이로제처럼 여기는 어머니가 적잖은데 골고루 먹기를 너무 강요하다 보면 반발해 특정 음식을 아예 외면한다거나 식욕 부진에 빠지는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가정의학과 서영성 교수는 "체중과 키의 비율에 문제가 없고 발육 상태가 괜찮으면 편식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면 영양 측면에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을 먹도록 유도하는 게 한층 쉽다"고 했다. 특정 영양소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밥상머리에서 싸울 게 아니라 아예 영양제를 먹이는 편이 현명하다. 성장기에는 입맛이 수시로 달라지고, 싫어하던 음식을 갑자기 즐겨 먹는 일도 생기기 때문에 과도하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가족들이 먼저 골고루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큼 훌륭한 자극제는 드물다. 한 상 가득 차려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우리 식사문화는 편식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인 셈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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