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옥] 한옥살이 이래서 좋다 / 경주 최훈식씨

직접 설계해 건축…인생 최대 작품 얻었죠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면 좀 과장일까. 경주 서남산 자락의 한옥에서 만난 최훈식(54'금강엔지니어링 대표)씨의 생활이 풍기는 첫인상이었다. 멀리 경주가 한눈에 펼쳐지는 풍광과 함께 고풍스런 150㎡ 규모의 ㄱ자형 한옥. 기와와 나무, 흙벽까지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다. 손수 설계해 짓기까지 1년간의 열정이 처마 끝과 벽면 곳곳에 묻어난다.

정밀측량에 일가견이 있는 최씨는 1989년 청와대 본관을 새로 짓는 데 참여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새삼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졌죠. 가마 끝을 휘감는 곡선이나 우아함, 자연 풍광과의 조화가 제 마음을 짠하게 만들더라고요."

한옥에 대한 짝사랑은 가슴 깊이 아로새겨졌다. 여행을 하다 한옥을 만나면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고 틈틈이 한옥 관련 서적도 읽었다.

2006년 경주 충효동의 전원주택에 살 때였다. "딸이 TV를 보다가 청도에 한옥학교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 전까지 경북에 한옥학교가 있는지 몰랐거든요. 곧바로 등록했죠." 최씨는 6개월 동안 주말마다 1박2일 청도 한옥학교에서 한옥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건축 측량 분야에 몸담고 있어 다른 수강생에 비해 이론과 기술 습득이 빨랐다.

학교 수료 후 그는 직접 제작한 한옥 설계도면으로 가족이 살 한옥을 짓는 데 열정을 쏟아부었다. 1년 동안 매일 공사장을 찾아 꼼꼼히 살폈다. 마음에 드는 실내등 하나를 사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방 4개와 마루방 1개, 거실이 딸린 지금의 한옥이다. 건축 비용만 4억원 정도.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최씨에겐 인생 최대의 작품을 얻은 셈이다.

한옥생활 4년. 최씨와 부인 신영순(52)씨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했다. 최씨는 그동안 생활의 변화가 많았다고 했다. "아내가 한옥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봄'가을 비염이 굉장히 심했어요. 코에서 콧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였죠. 오랫동안 병원을 들락날락했는데도 잘 낫지 않아 항상 괴로워했죠. 하지만 이곳으로 옮긴 뒤 1년 정도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비염이 사라졌어요. 감기도 한번 안 걸렸죠."

최씨 또한 헛기침을 자주 하는 천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감쪽같이 없어졌다. 그뿐 아니다. 그는 흙벽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고 했다. 여름이나 장마철에는 흙이 습기를 빨아들여 집안이 눅눅하지 않고 겨울에는 반대로 머금고 있던 습기를 내뿜어 실내 건조를 막아 준다. 더욱이 주방에서 생선 같은 비린내 나는 요리를 해도 흙으로 인해 냄새가 잘 나지 않는다.

최씨의 한옥 예찬론은 이어졌다. "보통 주부들이 한옥이 불편하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하지만 화장실이나 주방 등 실내를 현대식으로 바꾸면 큰 불편은 없어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한번씩 찾아오면 부럽다고 모두 입을 모으죠. 하룻밤 이곳에서 자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숙면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피로도 빨리 풀리고요.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을 만큼 실내가 시원하죠. 선풍기는 몇 번 사용했지만 에어컨은 한번도 안 틀었어요. 지금은 아예 작은 방에 처박아 두었죠."

최씨는 겨울에 다소 춥다는 한옥의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라 했다. "아파트에 살면 난방을 많이 하니까 더워서 옷을 얇게 입고 생활하잖아요. 하지만 실내외 온도차가 너무 나서 감기에 잘 걸리죠. 건강에 별로 안 좋은 겁니다." 예부터 위는 차갑게, 아래는 따뜻하게 하라고 했는데 한옥이 그렇다고 했다. 방바닥은 따뜻하고 위는 차가우니 기 순환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