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하트 모양의 붉은 선, 두 젖가슴 밑에 자그맣게 자리 잡은 자궁, 그 안에는 반짝이는 비취빛 작은 구슬들이 옹기종기 박혀 있습니다. 그가 몰두하고 있는 생명의 근원, 태아입니다. 바늘로 정성스레 꿰매어 구슬들을 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상수(上壽, 100세)인 루이스 부르주아는 보다 단순해진 선과 치유의 안정된 색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파란색은 평화와 명상을 뜻합니다. 2007년 이후 지난 3년간 휠체어에 앉아 하루 2시간씩 작업한 드로잉 24점과 3점의 조각 작품이 서울에 와서 보고 왔습니다.
드로잉이란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예술로 노 대가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마음을 읽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부르주아에게 드로잉은 예술에 입문하기 훨씬 전, 집안 사업을 돕기 위한 양탄자 무늬 도안을 그리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예술의 원천으로, 그 자신 '생각의 깃털'이라 부르며, 일생 동안 소소한 감정과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종이 위에 옮기는 작업을 반복해 왔습니다.
"꽃은 나에게 있어 보내지 못한 편지와도 같다. 이는 아버지의 부정을 용서해 주고, … 부활과 보상으로 이어지게 한다"고 작가가 직접 언급하고 있듯이,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꽃과 여성이라는 소재를 통해 생명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조각가 중의 하나로 꼽히는 루이스 부르주아는 결코 시대적 사조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작가로, '인체(여자)와 집'이라는 반복되는 주제로 줄기차게 작업을 해 와 일흔이 넘어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의 유명한 '마망', 거대한 거미 조각도 철조망으로 갇힌 집을 빠져 나와, 가정의 보호자로 집을 싸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녀의 거대한 거미의 청동작품 '마망'은 세계 유명한 미술관을 비롯하여 삼성 리움 미술관 옥외 전시장에도 아주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이는 알을 품고 있는 암거미로 모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만 작가가 유년기 시절의 공포와 강력한 심리적 환영을 구현한 작품이며, 육중한 몸체에 8m가 넘는 거대한 높이는 위태로워 보이는 가는 다리들로 겨우 균형을 이루고 있어 상처받기 쉬운 자아 정체성을 전달한다고도 합니다.
국제 갤러리 신관 1층, 이번 전시회의 포스터로 내 건 은 차분한 푸른색으로 다소 여유 있게 씨방을 그리고, 이를 에워싼 두 개의 꽃잎과 줄기와 잎들은 옅은 흑색으로 간략하게 표현해서, 흘러내리는 세부적 선의 모습이 기품 있는 여성의 옆모습으로, 작가의 자화상인 듯 했습니다.
한편 작품 는 '색은 잠재의식으로 소통한다'고 그녀가 말했듯 푸른 꽃잎들 속에 돌출된 붉은 꽃잎 하나가 혈이 흐르듯 강렬합니다. 아직 색은 얼룩입니다. 한 폭에는 붉은 색이 섞여 울고 있다면 한편에는 푸른 꽃잎들로 다소 진정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보들레르는 창녀와 방탕한 생활을 하며 미를 탐할 만큼 안식을 희구했던 시인입니다.
갤러리 2층은 포옹과 모자상 등, 온통 붉으면서도 따뜻했습니다. 그 중 의 연작이 대작이었는데, 이는 젖은 천 위에 물감을 한 번의 필체로 농도를 조절해 그렸다고 합니다. 모두 다섯 개의 봉오리를 단 꽃나무로, 이는 그녀와 남편, 세 아들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작품마다 봉오리의 크기와 농도가 다르게 번져나가는 붉은 물감이 핏덩어리인 양 경이로웠습니다.
전시작품 중 3점의 조각은 자신의 스웨터를 수직으로 길게 내려뜨린 것을 주물로 떠 브론즈로 만들고 그 위에 흰 페인트칠을 했는데, 축 늘어진 유방과 여근, 줄기가 잘린 구멍을 보여주는 꽃봉오리 형상입니다. 끝까지 몸을 떠나지 않고 추구하는 작가의 고집, 희면서도 거친 조각의 질감이 망각의 겨울에 들어선 노 작가의 작은 체구와 큰 손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프랑스 뤼베롱에 가면 루이스 부르주아 작품으로 꾸며진 개인 소유의 성당이 있습니다. 성유대 안에 성유는 없고 그녀의 살굿빛 젖무덤이 가득하고, 벽에는 수십 번 난자당하고 다시 기워진 헝겊 예수가 매달려 있고, 못 박힌 예수가 없는 루이스의 십자가, 십자가 가로축을 자세히 보면, 한쪽은 주먹 쥔 손, 한쪽은 펼쳐진 손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박정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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