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소원 백화총에

소원 백화총에

인평대군

소원(小園) 백화총(百花叢)에 나니는 나비들아

향내를 좋이 여겨 가지마다 앉지 마라

석양에 숨궂은 거미는 그물 걸고 엿는다.

'작은 동산에 핀 많은 꽃떨기에 나는 나비들아 / 향내를 좋이 여겨서 가지마다 앉지 말아라 / 해질 무렵 음흉한 거미는 그물을 매어놓고 엿보고 있다'로 풀린다. 종장의 '숨궂은' 은 '심술궂은' '음흉한'의 의미고, '엿는다'는 엿본다는 뜻이다. 그 옛말들이 이 시를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작자는 인평대군(麟坪大君, 1622-1658), 이름은 요, 호는 송계(松溪)다. 조선 16대왕 인조의 셋째 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이다. 인조 8년(1630)에 인평대군에 봉해졌고,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남한산성까지 호종(扈從 :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하였다. 소현세자, 봉림대군(뒤의 효종) 두 형을 이어 1640년 심양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다음해 귀국했다. 시서화에 뛰어났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육당본 『청구영언』과 『병와가곡집』에 시조 5수가 전하고 그림은 서울대 박물관 소장의 , 개인 소장의 등이 전한다. 저서로는 『송계집』 『연행록(燕行錄』 『산행록(山行錄)』 등이 있다. 그의 간단한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런 삶의 울분을 시서화로 풀어낸 대군은 예술인이었다.

이 시조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여 즐기지 말고 보이지 않는 곳에 기다리고 있는 위험을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를 짐작케 하는 것은 작품 속의 '향내'는 '좋은 것' 또는 '부귀영화', '가지'는 부귀영화를 만들 수 있는 매개수단, '석양에 숨궂은'이 향내 자체에 대한 보이지 않는 함정을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꿈꾸며 산다. 그러나 부귀영화는 저절로 오지 아니하며 온다고 해도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꿈꾸는 것이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와 모함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화가 되기도 한다. 이런 작품을 어찌 옛날의 작품으로만 치부할 수 있으랴. 인평대군이 남긴 시조가 오늘의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을 주는가. 세상엔 꽃과 나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미도 함께 사니까 말이다.

문무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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