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공기인형

마음을 갖게된 인형, 고독은 누가 채워줄까

"나는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은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가져버린 인형의 슬픈 판타지 동화다. 공기를 주입하는 실물 크기의 인형이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에 우리 삶을 투영시킨 영화다.

공기인형 노조미(배두나)는 성욕 해소용 인형이다. 주인은 헤어진 여인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함께 사는 것처럼 목욕도 시키고, 휠체어에 태워 산책도 시키고, 옷도 갈아입히고, 그리고 밤이 되면 '노조미!'를 부르며 섹스를 한다.

그가 출근한 어느 날, 노조미는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제 처마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으로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아! 예쁘다"라고 처음 말을 하게 된다. 세상이 궁금하다. 주인 몰래 외출을 한다. 분리수거하는 쓰레기차도 신기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신기하다. "다녀오겠습니다!"라며 등교하는 아이의 말도 따라 해본다. 우연히 찾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점원 준이치(아라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주인이 출근한 사이 비디오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준이치와 가까워진다.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는 '피노키오'에서 시작해 로빈 윌리엄스의 '바이센테니얼맨' 등 영화나 소설에서 곧잘 애용된다.

몸이란 것은 틀이다. 잠시 영혼이 들어와 숨 쉬다 시간이 지나면서 늙어가는 대여품이다. 공기인형의 몸도 그렇다. 영혼처럼 바람이 빠지면 버려지는 것이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대여되는 DVD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신세. 인간의 삶 또한 그런 것 아닐까.

'공기인형'은 20쪽짜리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무게도 없고, 매일 자신이 바람을 넣어줘야 하는 공기인형. 어느 날 누가 공기를 불어넣어 준다.

노조미가 팔이 찢겨 몸속의 공기가 빠졌을 때 준이치가 공기 구멍을 찾아 그렇게 해준다. 공기를 불어넣을 때 노조미의 몸은 부풀어 오른다. 마치 다정한 연인이 서로 애무하듯 서로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노조미는 처음으로 충만감을 느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의 아픈 현실을 그린 '아무도 모른다'와 현대 일본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짚어본 '걸어도 걸어도'를 연출했다. 냉정하게 관찰자적인 입장을 견지한 전편에 비해 '공기인형'은 감독의 감정이 120% 정도 노출된다.

그는 타인이 아니면 고독이나 공허감을 절대 채울 수 없다고 말한다. '빈 곳은 타인을 통해 채워야 한다'는 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한다. 노조미를 대상으로 성욕을 푸는 노조미의 주인이나 비디오 대여점의 사장은 공허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애처로운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감독은 뿔뿔이 흩어진 현대 도시 생활인의 모습을 공기인형을 통해 잘 그려내고 있다. 공동체가 사라지고 편의점과 대여점에서 간혹 만나고 다시금 집이란 곳에 갇혀버리는 낯선 인간들의 집단 공허감을 지적하며 "당신의 영혼은, 마음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감독의 연출과 함께 전라로 출연하며 섬세한 감정을 무표정하게 표현한 배두나의 연기도 잘 어울린다. 평소에도 인형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 배두나는 낯선 도시 도쿄를 만난, 인형의 낯선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녀는 이 영화로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일본 아카데미 우수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오다기리 조가 노조미를 만든 인형 제조자로 잠깐 출연한다.

일본식 판타지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더욱 실감하며 볼 수 있는 영화다. 러닝 타임 116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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