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자연을 벗삼아 여유 있는 봄 정취를 만끽하기에는 트레킹만한 것이 없다. 대구 인근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코스도 험난하지 않아 누구나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한다.
◆천생산
구미시 신동·황상동·금전동·장천면에 걸쳐 있다. 높지 않은데다(해발 407m) 길도 평탄하고 기암괴석이 장관까지 연출해 일찌감치 구미 인근에서는 트레킹 명소로 이름이 났다.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천생산의 산수에 취해 '인동천생산성'을 그렸을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하늘 천(天)자를 닮아 '하늘이 내놓은 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천생산(天生山)은 함지박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해서 '방티산',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가 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 때문에 '혁거산'으로도 불린다. 천생산 9부 능선에는 내외성을 합쳐 길이가 2.6㎞인 천생산성(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이 자리 잡고 있다.
천생산 트레킹 코스는 크게 네 코스로 나눠져 있다. 1코스는 구미시 황상동 월성빌라~신선바위~대피소~미득암~천해사(10.4㎞·5시간 15분), 2코스는 산림욕장~대피소~거북바위~미득암~천룡사~산림욕장(3.7㎞·1시간55분), 3코스는 남산5길~대피소~거북바위~미득암~천룡사 갈림길~신동1길(5.8㎞·2시간55분), 4코스는 금전1리~통신바위~쌍룡사~미득암(3.5㎞·1시간45분)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가장 무난히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코스는 2코스다. 동선이 길지 않고 산림욕장이 있어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산림욕장 주변을 산책하면 된다. 특히 산림욕장에 어린이 놀이터와 어린이 등산로가 마련돼 있어 가족단위 트레킹도 가능하다.
산림욕장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면 정상과 십장생 조각공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정상 가는 길로 접어들면 잘 정비된 완만한 황톳길이 나온다. 길 양쪽에 있는 소나무숲이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도심에서 맛볼 수 없는 상쾌한 공기와 적막을 깨는 산새소리를 벗삼아 5분 정도 올라가면 화장실과 음료대가 설치돼 있는 곳에 갈림길이 또 나온다. 어느 길(직진·오른쪽)로 가더라도 정상으로 통한다. 거리상으로는 오른쪽 길이 조금 더 가깝다. 하지만 정상 부분의 독특한 생김새를 제대로 조망하려면 직진해서 초정으로 가야 한다. 산림욕장 관리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초정은 천생산의 독특한 모양을 잘 살펴볼 수 있는 포인트다.
직진해서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네 개의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면 이내 초정에 닿는다. 옛날 초가지붕으로 된 정자가 있어 초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지만 지금은 나무로 만든 정자가 대신 서 있다. 초정에 서서 정상 부분을 보면 왜 사람들이 천생산을 두고 '하늘 천과 한 일자를 닮았다' '함지박을 엎어 놓은 것 같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초정에는 이정표가 없다. 자칫하면 길을 헤맬 수 있다. 기자도 초행이라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두리번거리다 마침 올라오는 등산객의 도움을 받았다. 오른쪽 길로 가야 정상이 나온다. 초정에서 정상 가는 길은 완만한 산등성이 길이다. 곳곳에 봄을 알리는 연분홍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다. 그 화사함이 등산객들의 피로를 씻어주는 활력소가 된다.
정상 코앞에 이르면 산길이 갑자기 가팔라지고 숨길도 덩달아 가빠진다. 급경사를 이룬 암벽 길 곳곳에 철제계단이 설치돼 있다. 계단을 잡고 오르면 오른쪽 발 아래 천생산의 전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정상에 오르면 구미시내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정상 남서쪽에 불쑥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 미득암은 좋은 전망대다. 미득암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한발 멀리 떨어져 아래를 보는데도 아찔할 정도다.
미득암은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 포효하는 상을 지니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난공불락의 천생산성을 공략하기 위해 왜군은 물길을 차단한 뒤 산 아래 진을 치고 성안에 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에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미득암에 말을 세워 놓고 쌀을 주르르 부으며 말 씻는 시늉을 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본 왜군들이 성안에 물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고 물러갔다고 한다. 쌀의 덕을 보았다 하여 그때부터 미득암(米得岩)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천생산성은 자연을 이용해 쌓은 자연성이다. 서·남·북쪽 3개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용하고 동쪽에만 성벽을 쌓았다. 미득암에서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 천연성벽이 보인다. 높이와 경사도를 보면 천혜의 요새였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이 쌓은 성벽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소실돼 지금은 군데군데 흔적만 남아 았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600m 내려가면 축조한 성벽을 볼 수 있다. 구미시는 몇해 전부터 산성 복원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도 4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일부를 복원할 계획이다.
◆가산산성
칠곡군 가산면에 있는 석성이다. 해발 600~900m 계곡을 따라 조선시대에 축조된 가산산성은 내성(4㎞)과 중성(460m), 외성(3㎞)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선 말까지 경산·하양·신령·의성·군위 등의 군영과 군량을 책임지는 군사요충지였다.
주차장에서 가산산성 동문으로 올라가는 3㎞ 흙길은 갈 지자 모양으로 이어져 있어 경사가 완만하다. 마치 동네 야산을 걷는 듯 편안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어 주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을 뿐 아니라 MTB 동호회 회원들의 단골 코스가 되고 있다.
칠곡군은 지난해 2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가산산성 진입도로를 정비하고 주차장을 넓혀 등산객과 관광객들의 불편을 해소했다. 대구에서 팔공산순환도로를 타고 한티재 방면으로 가다 해원정사 표지를 보고 좌회전하면 주차장이 나온다.
◆한개마을 돌담길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한개마을은 500여년을 이어져 내려온 성산 이씨 집성촌으로 고풍스런 고택과 돌담길의 정겨운 감흥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관광안내소가 나타난다. 안내소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진사댁이 나온다. 진사댁을 중심으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 길로 접어들면 교리댁(경상북도 민속자료 43호), 북비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44호), 월곡댁(경상북도 민속자료 46호) 등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황토흙 사이사이에 자연석을 박아 쌓아올린 돌담길의 정취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오른쪽 길이 제격이다. 해묵은 기와를 머리에 이고 있는 돌담길에 들어서면 고향집 대문 어귀에 온 듯 포근함이 느껴진다. 고향길 같은 돌담길을 따라가면 하회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26호), 극와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354호), 도동댁(경상북도 민속자료 132호), 한주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45호) 등 유서 깊은 고택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대구~성주~김천·초전 방향~한개마을.
Tip: 정상에 거북을 닮은 바위가 있다.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중앙고속도로~가산IC~상주·선산·구미 방향~514번 국도 군위·구미 방향~기래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해서 조금만 올라가면 산림욕장이 나온다.
글·사진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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