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화점, 그 속에 숨어있는 '유혹의 기술'

마치 오솔길을 걷듯 산책하는 기분으로 매장을 둘러볼 수 있게 만든 대백프라자점 8층 아동·골프 의류 매장. 지루하지 않게 매장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동선에도
마치 오솔길을 걷듯 산책하는 기분으로 매장을 둘러볼 수 있게 만든 대백프라자점 8층 아동·골프 의류 매장. 지루하지 않게 매장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동선에도 '재미'와 '감성'을 부여했다.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높다. 이 때문에 백화점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상행선 오른편 매장을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높다. 이 때문에 백화점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상행선 오른편 매장을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다. 김태형기자 thkim@msnet.co.kr

'넛지'(Nudge). '옆구리를 슬쩍 찌르다'는 의미로,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선택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물건들이 쌓여있는 백화점에서도 '넛지'는 곳곳에 숨어있다. 시계와 창문이 없고, 1층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차라리 고전이다. 요즘은 그런 일반론마저도 뒤집는 것이 추세. 고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사로잡고, 하나라도 더 구매하도록 하기 위한 갖가지 '유혹의 기술'들이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다.

◆'3무(無) 정책' 옛말

백화점에 시계와 창문을 달지않고 1층에는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1층에는 주로 명품 매장이 많은 만큼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하고, "화장실만 들렀다가 나갈 손님은 사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시계와 창문이 없는 것은 주부들이 날 저무는 것에 개의치 말고 쇼핑을 계속하도록 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은 개점 당시부터 1층에 고객전용화장실을 설치해 호응을 얻고 있으며, 영플라자에도 1층 고객전용화장실을 마련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매출보다는 고객의 편의를 우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유리 마감을 늘려 최대한 자연채광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매장을 구성하는 백화점도 늘어나고 있다. 탁 트인 느낌에서 기분좋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고객의 움직임을 포착하라

지난해 대백프라자점은 8층 아동·골프 의류 매장을 리뉴얼하면서 동선을 S자 형태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백화점 매장이 네모난 바둑판형 동선을 가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마치 오솔길을 걷듯 산책하는 기분으로 매장을 둘러보고, 지루하지 않게 매장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동선에도 '재미'와 '감성'을 부여한 것"이라며 "예전에는 고객이 빠르고 편하게 이동하는데 중점을 뒀지만 요즘은 오히려 고객이 지나다니는 동선을 일부러 늘리는 전략을 이용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에스컬레이터 효과'도 노리고 있다. 백화점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상행선 오른쪽 매장을 가장 '명당자리'로 꼽는다. 한국 사람들은 우측통행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고객의 70%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 또 백화점에서는 입구에서 곧장 상행선 에스컬레이터와 연결되게 동선을 배치해 놓고 있어 하행선보다는 상행선이 구매빈도가 높다.

백화점 1층에는 보통 화장품과 액세서리 매장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충동구매가 많기 때문. 동아백화점 관계자는 "화장품 매장과 향수 매장에서 풍겨나오는 은은한 향이 구매욕을 자극하는데다, 액세서리와 핸드백, 지갑 등의 패션잡화 제품은 구매의사가 없더라도 여성들의 발걸음을 가장 쉽게 멈출 수 있는 제품들"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

음악은 무의식중에 사람들의 마음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매장에 흐르는 음악 하나에도 백화점의 세심한 전략이 담겨있을 수 밖에 없다.

백화점에서는 날씨가 흐린 날은 경쾌한 발라드 풍의 음악을 통해 쇼핑객들의 기분을 전환시킨다. 또 세일기간이나 주말 등 쇼핑객이 많이 모이는 시간대에는 빠른 템포의 음악을 통해 고객의 흐름을 빠르게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또 봄에는 경쾌한 리듬의 왈츠 등을 통해 무거운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여름에는 바캉스를 연상시키는 신나는 곡을 통해 매출을 유도한다.

그 외에도 대구백화점에서는 직원들의 성취감을 위해 '매출 목표 달성 축하곡'을 정해놓고 있다. 팀별로 설정곡이 다른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이 매장에 흘러나오면 매출 목표를 달성했으니 축하하자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오후 3시와 6시에는 자우림의 '하하하송'을 내보낸다. 고객에게는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판매원에게는 나른해지기 쉬운 시간대에 활력을 불어넣고 매장 주변을 청결히 하는 시간으로 활용하자는 취지다.

동아백화점에서 날씨가 맑다가 소나기가 오면 권인하 등이 부른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들려준다. 반대로 비가 오다가 그치면 김건모의 '빨간우산'을 틀어준다. 이런 음악의 의미를 사전에 숙지하고 있는 매장직원들은 자연스럽게 고객에게 바깥 날씨를 알려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빌려주기도 한다. 올해처럼 황사가 심할 땐 이와 관련된 '암호송'을 내보내기도 한다.

폐점 시에는 리처드 클레이드먼의 피아노와 독일 쉔베르그 소년 합창단의 코러스 '모든 샘물이 흐를 때'를 틀어준다. 동아백화점 관계자는 "폐점 시간이 되면 고객들은 마치 쫓기는 마음이 되게 마련"이라며 "미처 쇼핑을 마치지 못한 고객에게 느긋함을 주기 위한 배려에서 선곡한 곡"이라고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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