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지방은 언제까지 서울의 그늘에 가려진, 못살고 불행한 지역으로 남을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매일신문사는 '지방도 잘 살 수 있다'를 주제로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의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홍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청와대 경제비서관(국토'도시'교통'농림수산 등 담당)을 지냈으며, 국토해양부 차관보, 국토연구원 원장, 인천대 총장 등을 지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과 갈등, 반목이 극에 달하고 있다. 아니, 지방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표현이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지방에게 스스로 재기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지방의 참담한 현실은 사람이 떠나고 있는 것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산업화가 시작되기 직전이던 1960년 당시 대구시를 합한 경북의 인구는 385만명이었다. 당시 수도권(서울, 인천 포함 경기도) 인구는 519만명으로 경북의 1.5배도 안 되었다. 약 50년이 지난 2008년 말 현재 수도권 인구는 무려 2천475만명으로 대구경북 인구의 5배에 가깝다.
결국 그동안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서울로, 수도권으로 꾸역꾸역 몰려들면서 지방은 빈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 전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쉽사리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소득과 재산 역시 수도권과 지방은 비교가 안 된다. 2008년 기준 서울의 1인당 연간 세금납부액이 653만원인데 비해 대구는 149만원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대구의 기업과 가구는 서울에 비해 4분의 1도 벌지 못하는 셈이다.
공인중개사협회의 공식 자료에 의하면 1983년 입주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개포우성아파트 25평형(전용면적 85㎡)의 최근 시가는 13억원에서 14억원 수준이다. 대구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수성구 범어동의 가든 1차아파트는 같은 시기에 지어진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이지만 시가는 5분의 1 수준인 2억5천만원 정도이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수도권 집중 억제를 위한 각종 규제는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시행됐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지방 육성 정책이 등장했으며, 지방에 대한 상당한 재정투자도 있었다. 심지어는 서울과 수도권의 기능을 빼앗아 지방에 주겠다는 세종시와 혁신도시까지 나왔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다. 이러다가는 정말 누군가의 주장처럼 '지방의 반란'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도권은 이기적이고 탐욕스럽다. '수도권부터 우선 키우자'는 이른바 대수도론이 정치권력의 지원 아래 탄력을 받고 있다. 지방은 '말도 안 된다!'며 울분을 터뜨린다. 젊은이들은 서울로, 수도권으로 다 떠나가고 있다. 지방이 사막처럼 완전히 죽은 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발한다. 지방도시들은 노인만 남아있는 오늘날 농촌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중앙정부 관료들의 이기주의는 지방분권을 가로막고 있는 주된 요인 중 하나이다. '지방은 스스로 다스릴 능력이 없으니,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손바닥만한 나라에 지방분권이 무슨 말이냐?'는 논리까지 별별 궤변이 다 등장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중앙의 힘세고 높은 분들이 정작 지방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애정도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등 소위 말하는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비전은 항상 거창하고 환상적이다. "지방을 살릴 사람은 나밖에 없다. 돈도 권한도 다 가져다 줄 테니, 나를 따르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장밋빛 청사진이 하늘의 뜬 구름이 되어 자취도 없이 사라진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대한민국은 이미 15년째 국민소득 2만 달러 밑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와 갈등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지방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대한민국의 참된 선진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그 길은 지방에 사는 사람, 특히 지방보통서민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는 데에서부터 열어야 할 것이다.
홍철 대구경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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