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우인생 벌써 40년…연극은 나의 운명"

대구 최고령 현역 배우 김현규씨 '늙은 부부 이야기' 주연 공연

▲대구 연극계 원로 배우 김현규(64)씨가 연극 인생 40주년을 기념해 16~5월 9일 소극장 우전에서
▲대구 연극계 원로 배우 김현규(64)씨가 연극 인생 40주년을 기념해 16~5월 9일 소극장 우전에서 '늙은 부부 이야기'를 선보인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긴 마취에서 깨어난 남자는 퍼뜩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위암과 대동맥류로 인한 대수술은 예순을 넘긴 육신에게 무자비했다. 병마는 70kg이던 몸무게를 몇 달 만에 44kg까지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생사의 기로란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참 이상하죠?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싶으니 무대 욕심부터 나더군요." 올해 배우 인생 40년을 맞은 연극인 김현규(64·우전 소극장 대표)씨 이야기다.

9일 오후 찾아간 남구 대명동의 극단 우전 소극장. 세트 제작을 위한 망치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김 대표가 반갑게 기자 일행을 맞았다. 그는 16일부터 막 올리는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의 주연을 맡아 의욕에 찬 모습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니까, 몸이 낫는 것 같아요. 연극인의 집념이랄까, 후배들한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흐트러질 수 없지요."

김현규. 그는 대구 연극계의 최고령 현역 배우이자 산 증인이다. 그를 빼놓고서는 대구 연극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1964년 '신무대'를 시작으로 '인간무대' '공간' '원각사' '넝쿨' 등 여러 극단에서 활동했고 40대 후반 나이에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 오직 배우의 길만 걸었다. 참여한 연극 작품 수만도 200여 편이 넘는다. 특히 60년대 중반 동갑내기 연극인이던 고 이필동, 황철희와 함께한 '신연극 중흥' 운동을 선언, 대구 연극계에 큰 획을 그었다. "당시 연극계엔 외국 번역극 위주였고 창작극은 거의 없었어요. 신연극은 말하자면 '우리 희곡'을 만들자는 거였지요."

젊음 하나면 두려울 게 없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야구장에 가로등을 비춰놓고 연극을 연습했고 공연 중에도 '불값'(조명비)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녔다. 밥 대신 군고구마를 점퍼 호주머니에 늘 넣고 다녔다. 연극은 원래 배고픈 건 줄 알았고 고생을 즐겁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의 40년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면 '만화방 미숙이'다. 그는 2007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 작품에 만화방 주인 장봉구 역으로 총 550여회 출연했다. 2008년 6월 수술로 1년을 쉰 뒤 지난해 9월부터 마지막까지 다시 100여회를 더 섰다. "서민적이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에요. 그런 무대에 설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금복문화상(96년), 대구연극제 특별공로상(97년), 금오대상 문화부문대상(2004년), 대구시 문화상(2006년) 등의 수상은 그의 노고에 대한 작은 보답이었다.

그는 2005년 사비를 털어 '우전 소극장'을 개관, 후배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해 줬다. '우전'(友田)은 유난히 벗을 좋아했던 그의 지인들이 '친구들의 텃밭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준 김 대표의 호다. 그는 "'늙은 부부 이야기'는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대사 외우기도 너무 힘들고, 더는 무대 욕심을 안 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후배들이 써주면 몰라도…"라며 씨익 웃었다. 공연은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4·7시, 일요일 6시. 053)653-2086.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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