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중계 해설로 야구팬을 만난 게 5년째다. 2006년 8월 1일 마이크를 잡은 후 11일 대구 KIA전까지 398경기에서 해설을 맡았다. 여기에는 2006년 삼성이 우승한 한국시리즈 6경기를 포함한 포스트 시즌의 중계횟수가 포함됐다. 지난해에는 원정경기 중계를 하지 않아 홈 67경기만 더해졌다.
솔직히 5년째 접어든 요즘은 긴장이 덜하다. 관록(?)이 붙었는지 스스로 많이 노련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처음 중계석에 앉았을 때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라디오 중계는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 박진감 넘치는 모든 사소한 일들을 말로만 전하다 보니 신속하고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생명이다. TV중계는 화면을 통해 경기내용을 볼 수 있지만 라디오는 오직 캐스터와 해설자의 말을 듣고 청취자들이 머릿속으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라디오 중계는 청취자들의 상상을 돕기 위해 쉴새없이 말을 이어가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청취자들이 볼 수 없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순간적으로 넘어갈 수 있다. TV중계가 누리지 못하는 혜택(?)인 셈이다.
중계석에 앉게 된 건 2006년 영남대 권영호 감독의 다소 강압적인 제의 때문이었다. 야구만 할 줄 알았던 필자는 단번에 'NO'라고 말하고 그 후 권 감독을 피해다녔다. "일단 해봐라"라는 거듭된 제의에 마지 못해 "예"라고 대답하니 그해 8월 4일 첫 중계일정이 잡혔다. 잔뜩 떨면서 자료를 모으고 나름 준비를 했다. 끙끙 앓기를 며칠. 난데없이 3일이나 앞당겨진 8월 1일 대구 SK전부터 시작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릴 듣게 됐다. 갖가지 이유를 대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첫 중계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실수연발'의 퍼레이드였다.
너무나 떨려 경기내내 기록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혀가 꼬여 말도 엉망이었다. 갑자기 선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몇 초를 침묵으로 보내기도 했다. 방송 용어도 알 리 없었다. 타자 몸쪽으로 들어온 '꽉찬 공'을 "몸쪽으로 잇빠이(일본어) 들어왔죠"라고 했다 당황한 표정의 캐스터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야구용어에 여전히 일본식 용어가 잔재해 있다. 포볼(볼넷), 데드볼(몸에 맞는 볼), 캐치볼(공받기), 노크(수비연습할 때 감독이나 코치가 쳐주는 것) 등이 대표적 예다.
6.6㎡ 남짓한 공간에 3시간 가량 앉아있다 보면 곤혹스런 일도 많다. 화장실 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올 시즌부터는 클리닝타임(5회 끝난 후의 운동장 정리시간)도 없어져 더욱 다급해졌다. 중계석이 본부석 쪽 2층에 있는 대구시민야구장은 그나마 화장실이 가까워 이닝 교체시간에 조금만 서두르면 볼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목동이나 광주구장은 관중석 맨 위층에 화장실이 있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연장 승부가 펼쳐지는 날엔 모든 힘이 배꼽 아래(?)로 집중되는 고통을 참아야한다.
중계를 위해 경기시작 3시간 전에는 야구장에 도착해 선수들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자료를 정리해야한다. 양팀 분위기, 선수들의 사소한 일들까지 챙겨 들으면 말할 게 많아 방송이 편해진다. 지역 연고팀 삼성의 경기를 전담 중계하다 보니 당연히 편파방송이 된다. 청취권역이 대구·경북이어서 불쑥 튀어나오는 사투리와 고유한 억양도 용서를 받는다. 지난해 부득이하게 원정경기 중계를 하지 않게 되면서 청취자들로부터 많은 항의가 쏟아졌다. 그때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이는 야구팬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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